발터 베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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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1892년 7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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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1940년 9월 26일 |
| 국적 | 독일국(1892년~1938년) 무국적(1938년~) |
| 종교 | 불명 |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 원래는 독창적인 철학적 입장을 갖다가 마르크스주의로 선회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마르크스주의와 유대신비주의를 결합하려고 드는 등 비정통적 입장을 고수했다. 에른스트 윙어나 카를 슈미트 같은 우익 작가들을 당연히 적대시했다. 철학자로서는 아주 일찍부터 프란츠 카프카에 관심갖기도 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1938년에는 나치가 아예 독일 국적을 박탈해버렸다. 이후 베냐민은 프랑스 시민권을 얻으려했지만 결국 그러하지 못했다.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기 시작했고 결국 파리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독일군이 명목상 점령하지 않은 곳에서는 비시 정부가 세워져서 유대인을 역시 탄압하기 시작했다. 베냐민은 뒤늦게 망명을 시작했는데, 진작에 미국에 가 있던 호르크하이머 등의 지원을 받아서 미국으로 망명할 계획을 세웠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로 갈 계획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역시 극우 독재정권이 장악한 상태였다. 이 때 자신의 유고 등을 한나 아렌트에게 전했고 이는 온전히 보관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스페인 국경에서 입국이 거부당하자 절망해 결국 자살했다. 그러나 그의 자살 바로 다음 날에 그를 제외한 다른 망명객들의 입국이 허가됐는데, 그의 자살에 당황해서 그랬다는 견해가 있다.
이런 비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비정통적 견해 때문에 트로츠키주의 계열이나 신마르크스주의 쪽에서 찬양하기도 한다.
미학에 관련해 아우라에 대한 정의를 내렸는데, 고유하고 유일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대량복제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아우라가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술이 결국에는 예술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겼다.
예외상태를 단지 법의 도구로 여긴 카를 슈미트 등과는 달리 예외상태가 아예 법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는 1984같은 소설에서 각국 정부들이 영원한 '전쟁'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나, 애초에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직도 한국전쟁이 '휴전'상태이고 정부에서 계속해서 국방의 의무 운운하면서 징병제 따위 실시하는 것만 봐도 뭔 말인지 바로 이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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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는 이 진술과 아주 다른 것 같다. 오히려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인류가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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