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윙어
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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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1895년 3월 29일 |
|---|---|
| 사망일 | 1998년 2월 17일 |
| 국적 | 독일 |
| 종교 | 가톨릭 |
독일의 군인 겸 작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군생활을 동경해서 아예 프랑스로 도주해서 군입대를 하려했으나 본인 가족이 적극적으로 방해해서 실패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당연히 참전했고, 전쟁 내내 막대한 용기를 나타내서 프로이센 최고 훈장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그런 훈장을 받은 인물들 중에 가장 어린 나이에 받은 것으로 남아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극혐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과거의 제정으로 회귀하길 원하지도 않아서 독특한 정치사상을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바의 핵심은 일종의 전체주의 체제를 수립해서 계획경제와 군국화를 추진하고, 동시에 급격한 과학기술 발전을 추구함으로써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극복해야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시기에 대표작인 『강철 폭풍을 뚫고』를 써서 작가로서도 상당한 명망을 얻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나치당에서 그를 포섭하려고 시도했는데, 정작 윙어는 나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결국 이들의 사이는 친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대도 아닌 상태로 지속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에 역시 참전했지만, 거기서 1차대전보다도 더한 참극들을 보면서 환멸이 심해졌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본인의 정치적 주장들을 대부분 접는다.
이후 여생을 곤충 채집 등의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간혹가다 독일-프랑스 친선의 살아있는 상징으로 대우받기도 했다. 당시의 사상으로는 '아나크'(Anarch) 개념이 있었는데, 정치적 아나키즘과는 별 관련이 없고, 외적으로는 자신이 현재 속해있는 체제와 교류할지언정 내면은 이와 관계없이 독립적이어야한다는 스토아학파식의 인생철학이었다. 68혁명 때에는 학생들한테 욕먹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여전히 이렇다할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부분의 생애를 종교에 무관심하게 보냈으나, 말년에는 가톨릭에 귀의했다. 1998년 무려 만 102세로 사망한다. 이게 얼마나 긴가 하면, 독일사에서는 독일제국에서부터 1990년 독일통일 이후까지, 한국사에서는 조선시대부터 IMF 외환위기까지 산 것이다.
카를 슈미트, 마르틴 하이데거, 율리우스 에볼라, 에밀 시오랑과 같은 우익 작가들과 친분이 있었다. 다만 에볼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윙어가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식으로 다소 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