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시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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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미하이 시오랑 | |
| 생년월일 | 1911년 4월 8일 |
|---|---|
| 사망일 | 1995년 6월 20일 |
| 국적 | 루마니아(~1948년)→무국적(1948년~) |
| 종교 | 무종교 |
루마니아의 철학자 겸 작가. 하지만 체계적인 사상을 세우는걸 일부러 기피해서 그냥 작가로만 간주되기도 한다.
어릴 때에는 니체, 쇼펜하우어에 심취했고, 미르치아 엘리아데, 외젠 이오네스코와 친교를 맺어 평생 친구가 됐다. 베르그송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나중에는 베르그송의 철학을 거부했다. 다른 한편으로 20대쯤부터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불면증은 그의 여생동안 계속된다.
1930년대에는 파시스트가 돼서 무솔리니, 히틀러, 루마니아 철위대 등을 공공연히 지지했었다. 특히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유학했는데, 그 경험을 아주 좋게 여겨서 히틀러만큼 호감가는 정치인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이 없으면서도 문화적 기독교 성향을 띄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기독교관에 순응하지도 않았다보니 신성모독 등의 논란을 겪었다.
1940년대부터는 프랑스로 이주해서 여생의 대부분을 거기서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자신의 파시즘을 공공연히 후회했다. 다른 한편으로 루마니아에 새로 세워진 공산정권은 당연히 그의 국적을 박탈해버렸고, 이 시기부터는 시오랑도 루마니아에 미련이 없어서 여생을 무국적으로 살았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랑스어로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후 프랑스의 문인들과도 인연이 생겼는데, 일례로 당시 유명인사로 떠오르고 있던 카뮈에게 자신의 글을 검토하게 했으나 카뮈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카뮈 면전에 패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카페에서 우연히도 사르트르 곁에 같이 앉게 되기도 했는데, 정작 본인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사르트르와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무엘 베케트, 에른스트 윙어와 친분을 쌓기도 했다. 또 시몬 부에라는 또다른 만성적인 불면증 여자와 동거하게 됐는데, 시오랑 본인이 반출생주의자였기 때문에 결혼도 아이도 갖지 않았고, 정말 여사친처럼 여생을 보냈다.
당시 프랑코 정권 치하의 스페인에서 시오랑의 수필 중 하나인 '사악한 데미우르고스'가 신성모독적, 반기독교적 등의 이유로 금지당한 적 있는데, 이를 두고 시오랑은 자신의 부조리한 존재 속에서 몇 안되는 코미디라는 식으로 비아냥댔다.
말년에는 불면증의 결과로 아예 알츠하이머에 걸려 사망했다. 이 때문에 말년의 사진을 보면 시오랑이 휠체어에 앉아있고 본인 동생이 자기를 여기저기 끌고다니는 모습이 있다.
1940년대부터는 니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변하고 대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더욱 존경했다. 종교적으로는 기본적으로 매우 회의적이었지만, 아예 무신론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외에도 불교, 힌두교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력이 워낙에 뛰어나다보니 문학상 수상자 지정을 여러 번 받았지만, 청년 시절에 받은 것과 생계비를 위해 받은 것 하나씩을 제외하면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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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의 명언들은 아주 넘쳐나기 때문에 나머지는 스스로 찾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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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알아 버렸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혼, 가족, 더 나아가 모든 사회 규범에 대한 내 두려움은 거기서 온다. 자기 자신의 결함을 자식에게 전달하는 것, 그래서 자신이 겪었던 시련을, 어쩌면 더 지독한 시련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범죄 행위다. 내 불행과 내 고통을 이어받을 사람을 낳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부모들이란 모두 무책임한 자들이거나 살인자들이다. |
” |
| “ |
우리는 태어날 때, 훗날 우리가 죽게 될 때 잃어버리게 되는 것만큼 이미 잃어버렸다. 모든 것을. |
” |
| “ |
자살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언제나 너무 늦게 자살하므로. |
” |
| “ |
왜 우리가 이 세계에서 일을 해야하고, 왜 우리가 친구들과 야망들, 희망과 꿈들을 가져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모든 소음과 복잡함이 더는 들리지 않을 세계의 먼 구석으로 후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문화와 야망을 포기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얻지 않을 것이다. 이 세계로부터 얻을 것이 무엇인가? |
” |
| “ |
인간은 매일 다시 시작한다. 그가 아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는 모든 것에 맞서서. |
” |
| “ |
일체의 소유는, 두려워하지 말고 강조하자, 우리 각자의 내면에 깊이 잠든 괴물을 저하시키고, 타락시키고, 아첨한다. 빗자루를 소유하는 것조차도, 그 무엇이건 우리의 재산으로 간주하는 것도, 일반적인 불명예에 참여하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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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 고려했을 때, 공산주의는 누군가 여전히 따를지도 모르는 유일한 현실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에서, 다양한 정도로, 우리 모두 공산주의자인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