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트로츠키
|
모두 힘을 합쳐 꼴리거나 찜찜한 부분이 있는 이 문서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 나갑시다. |
| ☭ 공산주의는 이 문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네가 이 문서에 푹 심취해서 낫과 망치로 때려부수고 대량학살하는 공산전체주의 독재자들을 빠는 종북 빨갱이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만국의 위키니트들이여 단결하라! |
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
| 이 문서는 숙청당한 인물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높으신 분에게 숙청당하여 정치생명을 잃거나 생명을 잃은 인물에 대해 설명합니다. 정치 이외에도 특정 세력에 의해 방출 또는 퇴출당한 인물이나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숙청따리 숙청따~ 너 숙청!! |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이 문서는 온갖 음해 그 자체 또는 온갖 음해에 시달린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여러분 이거 DAAAA 거짓말인 거 아시죠?? 허풍입니다 허풍! |
| 레프 트로츠키 ВЛев Дави́дович Тро́цкий | |
| 생년월일 | 1879년 11월 7일 (출생) 1940년 8월 21일 (사망) |
|---|---|
| 국적 | |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키로보그라드 |
| 별명 | |
| 종교 | 무신론 |
| 소속 | 소비에트 연방의 혁군평의회 주석 (1918년 5월 13일 – 1925년 1월 15일) |
| 정당 | 소련 공산당(~1927년) |
| 표방이념 | 극좌모험주의 트로츠키주의, 연속혁명론 |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의 가담한 주 혁명가였으며, 소련의 정치가였다.
똑똑한데 사회성 없는 놈이 재수없게 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트로츠키는 원래 지식인이였고 똑똑한 천재였다.
반공주의자였다고 한다. 근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큰 깨달음을 알고 "나는 이제부터 공산주의자야" 라고했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에 원래 볼셰비키 가담했다가 레닌새끼가 냉혹하다며 멘셰비키 가담했다가 러시아에서 쫓겨나 망명하였으나,
다시 레닌새끼한테 기겠다고 싹싹빌어서 멘셰비키 조지고 볼셰비키에 가담했다.
정통마르크스주의인 멘셰비키에 들어갔지만, 볼셰비키가 이길걸알고 갈아탄갈보면 정세도 잘 파악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레닌의 충성스러운 최측근으로 활동하며 공산당에 주요 역할과 소련 국방 장관까지 등극하였다.
하지만 레닌의 사상을 찬양하면서도 고집이 쎄고 오만하여 딴 공산당원들에게 거만하게 행동을 하다보니 대부분의 공산당원들이 원망했다.
공산당에서 레닌 다음으로 당내 권력을 가진 자가 트로츠키와 스탈린외 3명이였지만 그나마 나은건 둘이였기때문에 레닌의 사후 둘중 한명이 소련 국가원수가 될게 뻔했다.
레닌은 뒤지기전애 유서에 스탈린은 포악하고 광폭한 쓰레기이고 어떤 짓을 저지를줄 모르는 븅신 그루지야인이라고 깠고 트로츠키는 천재고 유능하지만 오만하다고 하였다. 그러니 차라리 스탈린보다는 트로츠키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유서에 적고 사망하셨다.
그러나 당시 스탈린은 남들이 보기에 겸손해 보이는척한걸로 유명해져 인기가 많았고 트로츠키는 오만하여 공산당 내에서 자신을 따르는 이가 없었기에 이 유서는 극비에 붙이고 스탈린을 원수로 추대한다.
결국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의해 소련에서 쫓겨나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살아있는한 뭔짓을 벌일지 두려웠던 정신병자새낀 자객을 보내 그를 암살한다. 머리에 송곳맞고 사망하신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20년 가량의 세월동안 갈등과 화해를 계속하는 사이였다. 트로츠키는 처음에는 레닌이 주도하던 볼셰비키에 반발해 탈퇴하고 멘셰비키에 가담했으나, 멘셰비키는 혁명론에 있어서 볼셰비키보다도 간극이 컸기 때문에 결국에는 이 역시 결별하고서, 10월 혁명 직전까지 두 단체 사이에 모호하게 있었다. 다만 말년에는 일찍 볼셰비키 편에 섰어야됐다고 후회하긴 했다.
그리고 레닌이 부르주아 혁명을 우선 거치자고 주장했을 때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을 내세우며 대립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트로츠키는 우선은 전쟁에 반대했지만, 동시에 레닌의 혁명적 패배론에도 반대하면서, 승리도 패배도 아니라는 모호한 구호를 내세웠다.
러시아 내전 당시에는 독일 측과 강화하자고 하던 레닌의 주장에 반대하다가, 독일군이 더욱 처들어오자 그제서야 레닌의 주장을 수긍했다. 그리고 내전에서 승기를 잡자 트로츠키는 노동조합을 국가에 종속시키자고 주장했는데, 레닌은 이에 반대했다. 이 역시 결국 트로츠키가 레닌에 수긍하고 말았다.
그래도 레닌 말년에는 둘이 서로 의견일치를 보기 시작했지만, 레닌은 끝까지 트로츠키에 대한 불만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레닌 사후에 트로츠키는 여태까지의 갈등들을 빌미로 스탈린 측에게 레닌주의자가 아니라는 비방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트로츠키는 숙청 및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해당 문서 참조.
트로츠키가 당시 레닌의 공산당 지휘부에서 백안시 당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여러가지 이미지가 나폴레옹과 겹쳐서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폴레옹 처럼 혁명을 부르짖다가 뒷통수 탕! 쳐서 대국적으로 제정으로 만들거 같다고 공적에 비해서 중용받지 못했다.
소련에서 쫓겨난 뒤에는 스탈린주의자들에게서 일제와 나치랑 협력해서 소련을 멸망시키려한다는 등 온갖 날조와 흑색선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