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 죄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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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르지 루카치
생년월일 1885년 4월 13일
사망일 1971년 6월 4일
국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헝가리
출생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정당 헝가리 공산당(1918-1948)

헝가리의 철학자. 원래는 유대인 은행가의 아들이었고 관념론 철학자였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이 발생하자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했고,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의 인민위원이 됐었다가 공산정권이 몰락하자 빈으로 망명했다. 이후 독일에서 활동했고, 이 때 '게오르크 루카치'라는 명칭을 썼다. 그러나 히틀러가 집권하자 곧바로 소련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소련에서도 다른 가족과 공동생활해야 됐고, 대숙청 시기에는 죽음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기존 철학 및 저작도 철회했다. 대조국 전쟁 때는 독일의 간첩일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의심을 당해서 체포 및 유배당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헝가리로 귀국해서 활동했다. 헝가리 혁명 때는 너지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 됐고 대학 교수도 됐으나 혁명이 몰락하면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다시 귀국했다.

언어적으로는 모국어인 헝가리어 외에 독일어,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

루카치의 철학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개념 중 하나는 물화다. 물화란 말그대로 인간 및 문화가 자본주의 아래에서 주체성을 잃고 단순 물질처럼 취급당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문화적으로도 주체성을 되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그의 주장은 문화적 복종을 요구하던 소련에 불쾌한 것이었고 결국 앞서 언급했듯 루카치는 이런 주장을 철회하기도 했었다. 다른 한편으로 초기 루카치는 변증법은 단지 인간사회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엥겔스의 자연변증법과 대치되는 것이었고 결국 철회됐다.

1930년대 이후부터는 19세기 초부터 계속된 비합리주의 철학이 파시즘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실존주의, 현상학, 생철학, 신칸트주의 등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거의 모든 철학사조를 매도했다. 이와 관련해 사르트르와 직접 논쟁하기도 했고, 아도르노에게 역으로 비판당하기도 했다.

평가 및 인식

[편집 | 원본 편집]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노동계급의 지도성 및 유물론 대 관념론의 투쟁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유대인 출신에 마르크스주의자면서 문화문제에 천착했다보니 당연히 음모론자들의 단골 떡밥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