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발트 슈펭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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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발트 슈펭글러 | |
| 생년월일 | 1880년 5월 29일 |
|---|---|
| 사망일 | 1936년 5월 8일 |
| 국적 | 독일국 |
| 종교 | 불명 |
독일의 역사철학자. 외증조할머니가 원래는 유대인이었다고 하지만 정작 슈펭글러 본인은 알지 못하거나 관심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무명 교사였으나 독일과 프랑스 간에 분쟁이 점증하자 서구의 몰락이 임박했다고 생각해 본인의 주저인 『서구의 몰락』을 저술했다. 저술 자체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끝났으나 그 전쟁 때문에 출간을 못하다가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끝난지 얼마 안 돼 출간했다. 이후 학계에서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무려 막스 베버 본인과 대면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강경 보수주의 성향이라서 당연히 신생 공화국을 극혐했고, 한 때는 나치에게 투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치의 극단적인 인종주의에 반발하다가 나치로부터 탄압을 당하기도 했다. 1936 베를린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85일 남은 시점에서 사망했다.
슈펭글러의 사상에서 가장 기초가 되면서 가장 많이 비판받는 부분은 문화형태론이다. 슈펭글러에게 문화현상은 초개인적인 생명력에서 비롯되는 유기적 현상이다. 그리고 동물이 다른 동물과 뒤섞이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없듯이 개개의 문화현상은 서로 유의미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도 여겼다. 슈펭글러에게 이러한 문화현상은 1000년 내외의 생명주기가 있는 것으로, 초기에는 단순 문화로서 나타나고 유기적이고 영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문명이 되어 화석화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에는 기계적이고 세속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후 생명주기가 다하고 나면 더는 아무런 유의미한 문화적 발전 없이 일종의 걸어다니는 시체, 즉 좀비 따위가 되어버리고, 아예 자멸하거나 다른 문화에 의해 정복되거나 하기전까지 그런 상태가 언제까지고 지속되고 만다는 것이다.
서구문명에 대해서 슈펭글러는 사실 그리스-로마로 대표되는 고전세계와 현대서구는 서로 단절된, 별개의 문화현상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서구는 근본적으로 파우스트적이라고도 슈펭글러는 주장했는데, 구체적 설명에 따르면 소설 파우스트에서의 동명의 주인공처럼 늘 무한한 향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슈펭글러는 니체를 비판하는데, 현대서구는 니체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고, 니체 본인이야말로 현대서구의 정신을 '극복'한게 아니라 오히려 체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대문명에 대한 슈펭글러의 진단 중에 가장 의의가 크다고 생각되는 것은 초저출산 현상에 대한 예견이다. 슈펭글러는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생물적인 의미에서의 생명에 대한 애착은 떨어지게 되고 대신 보다 이기적인 쾌락추구에 개개인이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초저출산 현상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 현대문명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당대로서는 아주 드물게도 환경재앙을 예견하기도 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자본가들이 누리는 이윤을 시기할 따름인 빈자를 위한 자본주의라고 비난했다.
정치 일반에 대해서는 로마 공화국이 겪는 심각한 분쟁과 내란 와중에 카이사르가 나타나서는 결국 독재정으로의 길을 열었던 것처럼, 현대문명도 서서히 독재와 '현대적 야만'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두고 슈펭글러 본인은 카이사르주의라고 불렀다.
기본적으로 반자본주의 성향이었던 슈펭글러는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이센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사유재산 등을 용인했고, 계급투쟁에도 당연히 반대했으며 단지 보다 더 개입주의적일 따름이다.
여러모로 파시즘과 엮이는 경향이 있지만, 슈펭글러는 자신의 반체제 성향과는 별개로 특별히 혁명운동을 주장하지는 않았고, 속한 정당도 없었다.
슈펭글러 본인은 초기에는 자신은 종말론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었다. 하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세계관이 염세화돼서, 사적으로는 서구문명과 함께 인류전체가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믿게 됐다.
가장 일찍 슈펭글러를 접한 인물 중에 하이데거가 있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슈펭글러가 주장한 주요 사항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등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논리실증주의자인 오토 노이라트는 아예 『안티슈펭글러』라는 책을 써서 슈펭글러를 반박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도르노가 슈펭글러가 카이사르주의 등으로 현대의 참상을 예견했다며 어느정도 인정했다. 하지만 아도르노 역시 슈펭글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아놀드 토인비가 슈펭글러의 유기적 사회관에 영향을 받아서 『역사의 연구』라는 주저를 썼다.
율리우스 에볼라는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을 번역하기까지 했지만, 말년에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슈펭글러는 자신에게 끼친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