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로널드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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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뇌절 틀 삭제하는 과정에 문서 내에 있는 틀도 안 지우면 그렇게 뜸 오해 ㄴㄴ

레이건-밀리터리 케인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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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딱 레이건 시절부터 생긴 단어가 '신자유주의'입니다. 대처리즘까지 빠는 시장의 일부분만 눈감아서 몰빵시키는 관료주의는 오스트리아 경제학 반간섭주의(laissez fair)를 왜곡시킨 결과물입니다. 실상은 케인즈의 버블경제로밖에 회귀되지않았고 또다른 개입주의를 방임주의의 폐해라는 것이 세간의 오해입니다.

ㄴ그건 신자유주의쪽에서도 극단적인 오스트리아 학파쪽의 주장이고 오해건 뭐건 주류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라고 하지 케인스주의라고 안 합니다. 개입했다고 케인스주의라니... FTA 맺었다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진신류들과 뭐가다릅니까?

그런식의 논리면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는 한번도 실행된적 없는 사상이 됩니다.



일단 신자유주의라고 하는건 그쪽에도 엮이기도 싫고 모욕적이다 싶은 표현이거든요(어미에 neo가 들어가면 좋지 않은 의미죠) 이를 빌미로 방임주의의 폐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불보듯 뻔합니다.

한곳만 개입을 눈감아주는 관료주의는 특권이자 자유침탈입니다.

모기지 사태때 오히려 신나게 개입주의의 폐해라고 설쳐댄게 오스트링 학파 정치인들과 학자들입니다. 최근에는 중앙은행 병신짓에 영화까지 나오는 수준인데 한국에 유난히 이런 오해가 만연화 되어있습니다.[2]


---Sheepnation (토론) 2015년 12월 30일 (수) 18:44 (KST)

ㄴ 한국뿐아니라 주류경제학자들도 대처나 레이건을 신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케인스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그중 일부일 뿐이고요. (신자유주의라고 하면 모욕적이라고 할테니) 주류경제학에서 대처나 레이건은 오스트리아 학파가 아니지만 개입주의, 케인스주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ㄴ레이건 정부의 과대한 정부지출로 인해 정부빚이 9000억 달러에서 2조8000억 달러로 3배 이상 뛰어올랐다는 사실을 보면 케인스주의의 단어정의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개입을 떠나서 독점을 통한 정경유착이 그런것이지요.

ㄴ 개입, 독점, 정경유착이 케인스주의가 아닙니다.

ㄴ 뭐 뉴딜의 산업부흥법이나 케인즈 일반이론을 보고도 그런말을 하신다면야

참고- 케인즈 국가주의 카르텔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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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학파의 한계

케인스의 정부주도의 사업발의를 통해 대기업들과 함께 사업을 벌이자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은 처음 고전학파에서는 정부의 예산을 가지고 기업들과 같이 투자한다는데에 케인스혁명이라 불릴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이내 60~70년대의 잦은 투자실패와 무능한 정부의 뻘짓으로 행정부의 엄청난적자와 인플레이션만 부른 결과를 초래해 "말은 쉽지" 라는 평가를 받게된다.

즉 케인스의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은 미래에대한 확고한 비전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때문에 오늘날은 시장에 간접적으로만 간섭하는 뉴케인지언이 등장하였다.

ㄴ 근데 레이건이 케인스주의라고 하는데 레이건은 개입을 최소화했고 님의말대로 개입했다고 한들 개입 = 케인스주의가 아닙니다.

ㄴ개입주의라는건 중립적인 표현을 위해 쓴 것이고 정확히 하자면 중상주의죠.



곡물파동-카르텔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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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 영국 농산시장은 겁나게 심각한 흉작을 맞이하여 수확체감이 극심하였으며 외생변수[1] 실물위주 경기변동이론과 화폐베일관에 힘이 실리는 증거가 되었다.


  • 마찬가지로 1930년대 미국 또한 이상기후로 인하여 개흉작을 맞이하였는데 제번스가 주장한 태양흑점 변동에 의한 경기순환이론 + 실물 외생변수 경기순환이론 +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순환이론과 부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리하자면,1920년대부터 이상기후 가뭄이 심각해졌으며 제번스 태양흑점설로 인하여 이상기후 흉작 실물위주 경기변동이론 적합하게 되었다.[2]

이에 불구하고도 케인즈의 이론은 1956년 이상기후 이후 중동국, 에체베리아 헌장에서의 자원 카르텔 결성의 움직임 확산, 56년 수에즈 사태, 1958년 이라크 카심장군 국유화, 1960년 OPEC 결성등에 영향을 주었다.

1988년 이상기후 흉작에서 국제 곡물재고가 급감하여 국제곡물가가 폭등 하였다. 이에따라 케인즈식의 미국 역사상 최대 농업구제책이 의회통과 - 1989년 오펙 감산 카르텔 재결성 가동에 영향 - 걸프전 오일쇼크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파장은 2011년~2012년에 연속된 3차,4차 세계 곡물파동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정치적 갈등을 야기했다.[3]

이에따라 케인즈는 제번스를 향한 반론으로 '터닝 포인트'[4]:"풍작, 재고증가가 불경기로의 터닝 포인트다!"라는 개드립을 치게 된다. 그러나 사실 터닝 포인트라는 개념은 후버와 뉴딜정부하 농업정책, 감산 카르텔 컨설베이션 경작제한 정책, 토양보호정책에 열라 개입활동했던 35년의 극한 가뭄, 개흉작 사태로 인해 '터닝 포인트'의 돌입을 설명하는 내용[5]이어서 케인즈 혼자만의 망상처럼 풍작, 재고증가가 불경기로의 터닝 포인트가 아니라, 흉작, 실물생산 공급 감소가 불경기, 골로가는 '터닝 포인트'라는 현시창 메세지를 담고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중상주의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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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는 자유무역따위는 엿이나 까잡수고 국가의 폐쇄적인 자급자족을 주장하였다.[6] 이에따라 케인즈주의는 부국강병을 구현하기 위해 부족한 자본을 조달하고 공기업을 통해 직접 생산을 담당하기도 하며, 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저항하는 노동 세력 등을 탄압해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신중상주의로 전락해버렸다.



케인즈 일반이론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7] 근린궁핍 정책(내핍조치 옹호)를 주장하였다, 즉 1930년대 뉴딜의 자원 컨설베이션 감산 카르텔을 옹호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1934년 루즈벨트 공개서한에선 소비확대를 주장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였다.




상기 논문자료에 의하면, 케인즈의 "..forever in a perfectly regulated economic paradise"라는 발언으로 미루어보아 중상주의에 대한 옹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케인즈가 의기양양하게 국가주의가 최고의 세계주의이며, 적대적인 정책들이 평화를 가져오며, 친화적인 정책은 전쟁을, 통화 안정성과 자유무역은 불안정성과 혼동을, 그리고 국가주의와 상호적대적 정책들(밀리터리 케인지어니즘, 네오콘주의)은 국제적 안정성과 '부' 를 가져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곳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설과 '모순들'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일련의 케인즈의 이론에서 그가 그렇게 싫어하는 자유경쟁 자체를 무엇으로 대체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케인즈의 실제 제안은 단순히 개인간의 또는 기업간의 경쟁을 국유화 되고 정치화된 경쟁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가질 뿐이었다.그것들은 '근린궁핍화 정책'[8]들과 무역전쟁(경제전)의 압력을 경감시키기 보다는 증대 시킬 뿐이었다.

케인즈가 1934년 공개서한과 뉴욕 타임즈 기사에 나오듯이 일반이론 저술 당시에도 미국의 카르텔 조업단축 공급축소 컨설베이션 내핍조치를 인식하고 있었다는것을 비취보면 이를 의식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이론을 저술했다는 아이러니함이 보여지는 대목이다.


They would increase rather than reduce the pressure beggar-thy-neighbor policies and for trade war and real wars........


위의 인용된 단락이 암시하고 있듯이, 국가주의적인 '근린궁핍화 정책들'[9]은 현실적인 것이며, 세계 금 표준과 대여와 무역의 자유는 평화 보다는 전쟁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각각의 나라가 다른 나라에 끼치는 영향을 개의치 않고 국가주의적 정책(중상주의) 정책을 따른다면, 각각의 나라가 '수출을 최대화' 하려고 노력하고 수입을 최소화 하거나 금지하려고 노력한다면 국제무역량은 지금까지 보다 더 커질 것이다(?)", "만약 관료들이 우리의 저축을 압류하고 우리가 큰 손실을 보지 않도록 우리 자신의 자금을 '투자하는 것'을 '금지' 한다면 [10]그들은 정확히 언제, 정확히 어디에, 그리고 정확히 얼마나 그것을 '투자해야 할지' 또한 정확히 어떤 모험 투자가 성공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을지를 알 수 있는 '완전한 전지(전지전능?)'을 가질 것이다"라는 괘변들과 같이 케인즈의 모순된 논리는 아직까지도 고전파 경제학에 기여한 모든 이들에 대한 어그로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보고있다.

결과적으로 케인즈의 이론은 뉴딜정책에서 수많은 카르텔의 형성을 위한 산업부흥법과 같은 정부주도의 독점법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이후 1937년 Court Packing 파동 터지고 미국내 반뉴딜, 반독점, 반카르텔 여론이 형성되어 뉴딜 민주당은 38년 중간선거에서도 참혹한 패배를 얻어 맞게 되었다.이후 뉴딜 정부는 이전의 컨설베이션 카르텔 조업단축 생산통제 정책을 종료하고 '시장경제, 경쟁체제' 경제로의 회귀, 자유시장체제 복귀를 공식 선언하게 되므로서 케인즈주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후 뉴딜정부의 루즈벨트는 이전의 코포라티즘, 혹은 비즈니스 콜렉티비즘(우파 집산주의), 빅 비즈니스 콘트롤(카르텔 기업집중 Broker State 정책, Swope Plan, 상공회의소 플랜) Price Controls 지지가격, 독점가격 정책을 공식 종료하고 '미시경제학' 경쟁시장, 시장자유 확대 정책으로의 회귀를 천명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케인즈주의로 인해 지금 미국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기업집중이 극심화 된 상태이다.

기업집중은 바로 본질적으로 전체주의라 볼 수 있을정도로 그 문제가 심각하다.

현재 미국은 기업집중 심화로 인하여 고용시장이 악화됬고 소비재 공급의 부족화를 초래했고 시민들의 삶의 질이 악화되었다

케인스주의는 궁극적으로 기업집중으로 인하여 '경제적 효율성'을 손상시키고 부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한계를 시사하였다.

케인즈의 이론은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과도 잘 맞아떨어져 부동산 시장에 흔히 불리는 '몰빵'이라고 불리는 자본몰아주기식의, 심각한 버블현상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버블 닷 컴과 같은 경제불황에도 기여를 하였다.

ㄴ 전형적인 오스트리아 학파식 주장에네요 무조건 개입하면 케인수주의야 빼애액

ㄴ문제의 핵심은 2001 년 연준이 저금리를 통하여 불황에 사전에 대처하려고 했던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실제 금리는 역사적인 평균 밑으로 떨어졌습니다.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주장한 모든 금융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린스펀은 2001년 1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연방 자금을 6.5 퍼센트에서 1 퍼센트까지 깎았다.
  2. 2006 년 6 월에 그것을 다시 5.25 퍼센트로 끌어올리기 전까지 비율을 내내 이 수준으로 유지했다.

이게 바로 그가 일찍이 만들어 낸 거품을 터뜨린 움직임이 되었죠.

ㄴ레이건은 작은 정부를 역설했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있어서 그는 막대한 지출증가를 하였습니다.

ㄴ 레이건이 케인스주의라고 오스트리아 학파가 주장한다고 케인스주의가 아닙니다.

ㄴ케인스주의건 아니건 국가주의라는건 변하지 않습니다.---Sheepnation (토론) 2015년 12월 30일 (수) 19:18 (KST)



  1. 시장 밖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경제 변동의 요소
  2. 1925년 이상기후 흉작 - 미국 GM 찰스 케터링 바이오 곡물 대체에너지 연구 중단 초래(곡물가 폭등, 식량부족 때문)
  3. 리비아 사태, 아랍의 봄 발발에 영향
  4.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by John Maynard Keynes, Fellow of the King's College, Cambridge, published by Harcourt, Brace and Company, and printed in the U.S.A. by the Polygraphic Company of America, New York;[3]
  5. David R. Montgomery. Dirt: The Erosion of Civilization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7. xi + 285 pp. $24.95 (cloth), ISBN 978-0-520-24870-0.[4]
  6. National Self-Sufficiency by John Maynard Keynes(1933)[5]
  7. The Failure of The "New Economics" forward by Murray N. Roth Bard[6],한국어 번역문[7]
  8. 1937년 케인지언 조안 로빈슨 -Beggar-thy Neighbor 발표
  9. 뉴딜 컨설베이션 독점카르텔 내핍조치등
  10. 뉴딜 카르텔- 투자제한 공급제한 소비제한 조업단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