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아나코 캐피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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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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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자유지상주의자나 아나코 캐피탈리스트가 아닌이상 중립성에 문제있다고 보여집니다. 님이 어떤 변명을 하든지 말이죠 --바다의 왕자 (토론) 2016년 5월 9일 (월) 16:46 (KST)

만약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ㄹ육님이나 스칼렛님한테 물어봅시다. 중립성 틀을 붙일지 말지 --바다의 왕자 (토론) 2016년 5월 9일 (월) 16:46 (KST)

ㄴ분명히 두가지 관점의 견해를 명시해놨는데 중립성 위반이면 사민주의 트로츠키 샌더스 기타 사회주의 좌익 우익 항목 모두다 수정하도록하겠습니다

ㄴ수정이요? 내용을 함부로 지우시는건 안됩니다. 차라리 내용을 추가하십시오

ㄴ도대체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주장하는 바를 적은건데 도대체 저기에 무슨 중립성이 문제가 있다는 건지? 아나코 캐피탈리즘의 장단점을 적었나 해악/성과를 적었나? 중립성 운운할거면 근거를 가져오세요

"치우칠게 있어야 치우지지. 빵이 없으면 왜 자유가 의미가 없나? 전형적인 유물론 오지구요" 라고하시는데 당장 굶어죽게 생겼는데 자유가 뭔 의미가 있습니까? 이게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발상이 아니면 뭡니까? 어이없네요. 인권개념으로 보면 자유 평등 모두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민주의자인데 빌리 브란트도 빵과 다원주의 없이는 자유도 민주주의도 없다고 했습니다.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중도우파 이념이 아니지만 사민주의는 중도좌파 이념입니다. 스펙트럼상 누가 더 옳을까요?[1]

"자본주의의 시작은 소유권(재산권)의 절대적 옹호에서 시작하는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럼 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아닙니까? 물론 순수한 자본주의는 아니지만 이세상에 완벽하게 순수한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ㄴ왜 불가능한데요? 근거도 없으면 그냥 불가능하다고 하시면 안되죠 국가자본주의는 서로 짬뽕된건데 뭐가 아니고 뭐가 맞다는 건지

사민주의 항목은 중도좌파 이념인데도 좌편향틀 붙였습니다. 오히려 이게 편향된거지 사민주의 항목이 편향된건 아닌데도 말이죠.


ㄴ국가자본주의는 프리트레이드도 아니지 않습니까? '수정자본주의'라는 말도 언어철학적으로 사람들이 용어를 그렇게 쓰니까 그말로 쓰는거지 자본주의가 자유로운 시장교환 자체인데 자유로운 교환체제를 인정하면서 그걸 못하게 막는거는 단어정의의 모순이 일어나는 부분입니다.

더군다나 나치 국가사회주의는 우리 사회주의랑 다르다니 '현실사회주의'랑 다르다더니 하면서 족보따지는 반면에 글쓴이 분께서는 옳고 그러고를 떠나서 양쪽 견해를 명시해놨는데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기존 아나키스트들에게 정통성이 없다고 비난당한다) 그냥 자본주의는 악이고 국가개입적인 평등은 선이니까 틀리니 편향적이다라는 PC(political correctness) 사관을 강제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Sheepnation (토론) 2016년 5월 10일 (화) 18:32 (KST)

ㄴ 제가 언제 자본주의는 악이라고 했습니까?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시장교환이 아니라 사실상 시장경제 그 자체입니다.

ㄴ 그 시장경제의 핵심은 뭡니까 재산권 아닌가요? 그 재산권을 극강으로 치켜 올렸는데 도대체 뭐가 오른쪽인거냐고요

ㄴ 현대 정치 스펙트럼 기준으로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사상은 우파로 간주합니다.


정치적 스탠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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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게 따지면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고전적 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좌파사상입니다.

ㄴ 현대 정치 스펙트럼에서 아나코 캐피탈리즘을 포함한 경제적 자유주의는 우파로 간주됩니다.

ㄴ 우파로 분류하는 게 웃긴거죠 원시부족사회의 집단주의에서 가장 벗어난 게 바로 자유주의인데 무슨 우파인지


ㄴ 그건 님의 생각이고 위키백과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파이념이라고 간주되는데 나보고 어쩌라는건지;; 애시당초 현대 좌파우파 개념이 프랑스혁명때의 기준인가요? 그럼 사회주의도 집단주의니 좌파가 아닌 우파인가요?

ㄴ 생각을 해보셈 왕당파같이 집단주의적 발상을 하는 쪾이 우파고 그 반대가 좌파였는데 도대체 그런 집단주의를 전면으로 배격해서 평등마저도 버리냐고 욕먹는 자유주의가 우파로 간다는 게 말이 됨?? 오히려 왕당파와 어느정도 비슷한건 사회주의인데요? 당연히 사회주의가 우파죠

그에대한 시초는 프랑스 국민공회 왼쪽에 앉았던 자유시장주의자 프레드릭 바스티아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급진적인 자코벵파와 왕당파의 견제구조가 무너지고 무계급을 원하면서 실제론 국가주의로 번진 공산주의가 Authoritarian으로 분류됨으로 따라 좌우파 스펙트럼 분류는 힘들게 되었습니다(다만 거시적으로 대략적인 흐름만 파악 할 뿐이죠)

또한 이에따라 공산주의와 족보가 다른?...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수정주의 사관, 방금과 같은 사민주의 같은거야말로 '중도적이니' 이외에는 레디컬하고 다 틀렸다는건 전형적인 전체주의 PC사관이라 볼 수 있겠고 근대부터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버크와 피터 드러커의 사상들, 네오콘까지 좌파로 분류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볼 수 있겠죠.

ㄴ 사민주의 같은거 이외에는 다 틀렸다고 보지 않는데요? 유럽식 기독교민주주의 같은 중도우파 이념, 미국식 사회자유주의도 긍정적으로 봅니다만? 아나키즘이 레디컬한 사상이 아닌가요? 그리고 실용주의를 표방하면 왜다 좌파입니까? 그리고 공산주의라고 다 국가주의가 아닙니다. 아나코 코뮤니즘도 있습니다.

ㄴ무계급 세상의 과도기적 단계로서 국가주의를 옹호한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 떨어져 나온게 크로포트킨, 푸르동과 같은 아나코 코뮤니스트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긍정적이게 보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중도적'으로 보이는게 아니면 편향되었다"가 논자가 아니었나요?

ㄴ 편향된게 아니면 뭐죠?

ㄴ그러니까 중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게 무슨 기준이죠? 실용주의에 입각한 것입니까? 전형적인 PC주의의 모순인데요 디시위키 패드립 허용도 된 마당에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중도우파 이념이 아니지만 사민주의는 중도좌파 이념입니다. 스펙트럼상 누가 더 옳을까요?

이거 님이 하신 말인데

실용주의면 좌파인게 아니라 좌파 우파 분류기준이 불분명해진 시점에서 정치 스탠스를 어디에다 분류해서 정당화 시키는건 의미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왜 좌익으로 분류가 될 수 없냐고 질문드린 것이고요. 레디컬하고 레디컬 하지 않는걸 나눈다면 평화주의적 아나키즘, 아나코 캐피탈리즘의 비침해성의 공리는 레디컬 한건가요? ---Sheepnation (토론) 2016년 5월 10일 (화) 19:26 (KST)

ㄴ 아나키즘 자체가 어느정도 레디컬함을 갖고 있습니더.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세금 자체를 부정하니 레디컬하다고 볼 수 있죠

ㄴ 급진성의 기준이 머임?? 그냥 현실에서 멀어지면 그냥 급진성?? 오히려 현실이야말로 자유에서 멀어지는 급진적 국가주의 아님? 뭔기준으로 레디컬을 논함

ㄴ 현실성이 떨어지니 급진적인게 맞죠... 국가주의가 급진적이라고 볼 순 없죠 파시즘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오늘은 그만하겠습니다. 저도일이있어서 일찍 자야합니다. 토론이 끝날때까지 함부로 자유인 틀을 붙이지 마십쇼

ㄴ전혀요 평화를 논하고 폭력을 금지하고 집단주의를 배겨하여 노예를 없애는 것인데 이게 현실성이 떨어지니깐 급진?? 도대체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것이죠 언제부터 노예제라는 현실이 중심이 급진성의 중심이 되는 지 결국 성공하려면 지금의 노예제에 빌붙어 먹으라는 논리밖에 더되는지? 이런 도덕도 없고 근본도 없는 생각이 더 허망해보이네요

ㄴ 그놈의 노예드립 작작치십쇼 언제부터 집단주의 = 노예가 되었죠? 그럼 사민주의도 경제적으로 간섭을 주장하니 사민주의자들도 다 노예제 존속하는 인간들인가요? 님이 말하는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야 말로 굶주림애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예로 전락시킬 뿐. (이러면 또 자유계약 드립치겠지만)

ㄴ 굶주리는거야말로 노예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배부르게 먹어야 노예가 아니라는 전형적인 유물론적망상에 결과주의 공리주의 파쇼주의 별에별거 다 섞이네요 집단주의가 멉니까? 사람 머리위에서 서서 다른 인간들을 덩어리로 만들어버리고 그 덩어리속에 부속품으로 만들고 거기에서 못벗어나게 하는데 이게 노예아님? 사민주의는 반쯤 노예인거죠

ㄴ 그럼 기민주의, 사회자유주의 등등 현대사상 대부분이 다 반쯤노예겠네요 더이상 논쟁이 불가능하네요 근육님께 여쭤봅시다. 자유인 틀을 붙일지말지 사민주의가 반쯤노예라는 미친소리 하시는 분과 더이상 논쟁하고 싶지않습니다.

ㄴ 게다가 파쇼주의 얘기 꺼내셔서 그런데 별 관련 없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민주의자들은 항상 반파쇼진영에 섰습니다. 특히 스페인 내전때 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진영과 연대에서 반파시즘진영을 형성하였죠

ㄴ 파쇼vㄴ 덜 파쇼의 전쟁이죠 웃긴거죠

도대체 다른 인간과 인간을 정치라는 풀glue로 묶어놔서 둘이 삼썅둥새끼마냥 붙어다녀야하고 군중이라는 논리에 개인이 짓밟히는데 이게 노예가 아니면 뭐가 노예 사적 노예만 노에인가

ㄴ 애초에 자본주의가 집단적으로 계층을 묶어 버리고 이익을 위해 개인을 틀에 넣는 "집단주의"아닙니까? (다른 토론 떄문에 좀 기다리십쇼. 그리고 neoreactionary나 paleolibertarian같은 나치와 사회 "진화론"과 아나코 자본주의의 연관성은 호페가 보여주듰이 엘리트주의의 측면에서 비슷합니다.

'객관성'을 위해 사회주의적 관점으로서 거시적으로 봐드릴려고 했는데, 세세하게 미시적인걸 원하신다면 그 족보부터 개인까지 따져보신다면야 저야 좋습니다. 이런 접근방식이야말로 토런에 진전이 있다는걸 알 수 있네요---Sheepnation (토론) 2016년 5월 10일 (화) 18:54 (KST)

"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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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페이지에서 문서 토론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토론하시지 마시고 토론 문서에서 토론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conomic Caculation Problem은 중앙 집권화 체제에만 존재해서 아나코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될수는 없읍니다.

ㄴ 경제계산은 인간간의 상호작용을 어떤식으로 할 것이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앙집권이고 나발이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중앙집권자들이 반박을 중앙집권식으로 갔기 때문에 그쪽으로 흘러간 것이고요

ㄴEconomic Caculation Problem은 시장이 언제나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economic equilibrium은 시장경제에서도 이루어직이 힘들다. 아나코 공산주의 에서도 자유로운 개인들의 협동조합들을 통해 자체적으로 gift economy가 있어서 자체적으로 자신을 중앙 없이 컨트롤 한다. 현재까지 있었던 아나키스트 사회들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ㄴ소위 말하는 그 균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나? 중앙의 여부와 상관없다. 경제계산의 핵심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협력을 가장 최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관한것이다. 그 방식은 소위 비가격체제(명령체제를 비롯해 분배, 공유체제를 포함)에서는 갖지 못한 것을 가격에서만 갖는다는 사실에서 연원한다. 전체적으로 자원이 어디로 흘러가고 마느냐는 부차적 문제다.

ㄴ 아나코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닌데요?

현실적이 아니면 비판입니까? 이데올리기로서 의미가 있는데 현실적이 아니라고 그게 비판이 될 순 없죠.

더군다나 현실적이 아니라고 하지도 않았고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최근 학계적 교류로 경험주의적으로 더 현실적이라는 점을 더 어필한 것 뿐입니다.

아나코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개인간의 물물교환 없는 경지체제가 어떻게 이루어질진 모르겠지만 confederation 이념 자체는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 문서는 아나코 캐피탈리즘에 대한 문서지 아나코 사회주의 비판과 반론에대한 문서가 아닙니다

ㄴ아나코 캐피탈리즘에 독단적으로 더 "현실적"이라 하는게 더 이상하죠. 그냥 막연하게 경험주의적이고 더 현실적이다 라고 하는게 말이 안되죠. 비교하는 시점에서 이상함이 생기는 거죠, 경험적으로 따지면 오히려 아나코 사회주의가 더 현실적이죠. (cnt-fai&과거 인류의 대부분)

ㄴ 과거 인류 대부분이라는 식으로

사적 변증법을 근거로 현실적이라고 하시는데 그게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사적 변증법은 경험주의가 아니라 변증법입니다.

아나코 사회주의에서 경제학적 모델이 제시되거나 인정받은적이 있나요? 본문의 문장은 경제적으로 더 현실적이라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나코 사회주의는 경제학을 거부하고 이데올로기를 주장하지 않습니까?

ㄴ당신이 아나코 자본주의 사회를 더 "경험주의"라고 말할 때는 과거에 있었던 사회들을 증거로 드는데 왜 아나코 사회주의 사회들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까? 그리고 농업 이전에 있었던 많은 사회들은 공유적이면서도 무정부적이었고 현대에 와서도 스페인 같은 곳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peter-gelderloos-anarchy-works#toc10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peter-gelderloos-anarchy-works#toc12 옛날의 사회의 경험에 따라 사상이 작공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변증법이 아니죠. 아나코 사회주의의 경재학은 분명히 존재하고 현실 사회인 아나키스트 카탈루냐와 같은 사회들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했습니다. The Conquest of Bread 아니면 What is Property? 아니면 anarchist economics를 읽이십쇼. 자본주의 경제학은 자본주의자들에게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http://theanarchistlibrary.org/library/the-anarchist-faq-editorial-collective-an-anarchist-faq-04-17 아나코 사회주의를 그저 막연하게 이데올로기적이다 라고 하는것은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정작 자본주의 경제학은 엘리트들의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되어서 억압을 정당화합니다. 아나키스트 경제학도 존재하고 아나코 공산주의도 이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나코 자본주의자들말이야말로 이상적으로 그냥 막연하게 자본가들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지 않고 사유화된 서비스들이 결국에는 사회에 더 긍정적이라고 믿고 현실을 부정합니다. 당신도 그저 막연한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주류 경제학자들한테도 praxeology 때문에 까입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그저 자본주의적 추측에 베이스를 두고 있습니다.

ㄴ 내일 돌아온다


ㄴ본 항목에 명시해둔 레퍼런스는 오스트리아 학파가 아니라 주류 시카고 학파 경험주의 논증입니다.

원래는 학계에서 인정받는 시카고 논증으로 끝내려고 논증 링크 하나를 첨부했지만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사례없는 이론일뿐이라고 해서 역사적 사례를 추가적으로 첨부한 것 뿐입니다.

또한 무턱대고 "과거 인류의 대부분" 한마디로 근거로 내놓으신 점은 사적 유물론이라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현대경제학이 요구하는 경험주의의 기준은 하나의 경제학 사이클입니다, 주로 수리학적 모델을 따지죠.

이 논의에 오스트리아 학파가 왜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스트리아 학파조차도 ABCT 모델을 거시경제학적 수리모델에 대입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반면 아나코 사회주의 "경제학"은 아무런 구체적 모델이 제시되지조차 않고 있습니다. 일부 상호부조나 집단생산의 개념을 언급해놓을뿐 생산공장의 운영이 어떻게 제시되는지 누가 운영(?) 하는지 각기다른 전반적인 산업엔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익구조의 분배와 관리는 어떻게 되는지(여기서 시장의 Natural rate가 만들어내는 파레토 비효율이 아닌 특정 관리집단이 제시하는 자의적 분배기준은 기존의 중앙계획경제와 차이가 없습니다) 개인의 경제지표를 측정할 접근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제시될수가 없겠죠.

왜냐하면 재산권이 없어서 개인의 경제 규모계산이 불가능해 모델이 제시될 수 없고 더나아가 절도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을 납치한다던가 남의 것을 빼앗아도 문제가 되지 않죠, 단지 '공유'를 한 것 뿐이니까요. 이런 범죄에 대해서 남에게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재산에 대해 허락을 받거나 이에대해 보호하려는 행위는 재산을 공유하려는 창조적 개인을 무시하고 악덕 자본가들에게 고용된 관료들의 부르주아적 행태이니까요.

또한 잉여가치 없이 생산에만(이 조차도 단순공업만 설명됨) 의존해 나오는 불균형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들은 안콤 경제학에서 베제됩니다, 다 자원의 '공유'가 작동하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이렇게 반증이 베제되고 참의 값만 도출하는 것을 애드 혹이라고 합니다.

결국 제가 본문에 적시한 경험주의라 함은 개인의 미시적 모델과 총체적 사이클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하며 애드혹의 여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애드혹 반증없이 참으로 작동하는 합이 만들어진다면 변증법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습니다.


ㄴ나머지는 내일 반박 그리고 완전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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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ism: A Documentary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그리고 제가 상당한 수의 과거 사회들이 아나키스트적이었고 작동했다는 것은 Harold Barclay와 많은 (자본주의) 역사가들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학은 human nature 가정에 기초해 있고 실제 현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아나코 공산주의에는 매뉴얼 같은 어떴게 모든 것이 작동해야 하는지가 없고 교조적이지 않습니다. 남을 납치하는 것은 개인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고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으므로 안된다. 그리고 개인의 자율을 공격하고 억압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협력이라는 이상에 반대된다. 그리고 공유적인 사회에서는 사실상 훔칠 이유가 없고 실제 역사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possession은 사회의 느슨한 약속에 기반해 있다. 그리고 님이 말하는 "절도"는 무슨 절도를 말하는 것이야 제데로 반박이 가능합니다, "범죄"가 애초에 일어나는 이유는 결국 니껐 내껐이 언제나 모든 것에 있고 이기적인 문화와 우리의 생산 방식에 의해 생깁니다. 다시 말하듯이 절도는 문재가 된 적이 없습니다.

실제 역사적 사례에서 작동한 것은 증거/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anarchist Catalonia). 그리고 잉여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님이 잉여가치를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 겁나까? 도데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못 알아먹겟고 애초에 자본주의적 경제학은 굉장히 많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한 가정들에 기초해 있습니다.

오히려 possession은 안콤 사회에서 느슨한 서로와 느슨한 사회적 약속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안콤에서는 자율적인 개인들과의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와 협동조합들의 네트워크를 꿈꾸고 세세한(예를 들어서 어떴게 일을 서로 정할까)는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local레벨에서 결정이 됩니다.

대중적인 의견과는 반대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이론적 분석이나 미래예측을 거부하려는 유토피아적 운동이 아니였다.

이런 운동의 전통에서 그런 분석에 대한 결론은 지금 당장 내려질 수 없고, 투쟁과 실험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 되어 왔으며, 그런 실험을 통해서 민주적인 구조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 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오히려 이것은 도그마와 일련의 예언등과는 대조되는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 조직에 대한 교조주의적 접근은 결국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역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마르크의주의의 개념에 부정적이다. 저명한 아나키스트인 루돌프 로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적이 있다. “내가 아나키스트인것은 아나키즘이 최종적인 목적지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세상엔 목적지 같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https://img.ifcdn.com/images/4c7b40157634321e7481fdef964e6675385a01ad344b04e161f7ce9b294509ae_1.jpg


ㄴ 전혀답변이 되지 않네요.

외국인 친구의 답변을 번역하시거나 여기저기서 짜집기 하신거 같은데

정리가 아직 덜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답변이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 이익구조의 분배와 운영의 관리는 어떻게 되어지는지 전혀 답변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느슨한 사회적 약속"이면 해결된다 얼버무릴뿐입니다.

2.자신의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닌데 남을 납치하고 사용하는 것이 왜 개인에 대한 공격입니까? 단지 타인의 몸을 잠시 빌리고 공유한 것인데요. 그리고 이런 '공유'활동을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자체를 개인의 공유를 한집단이 통제하겠다는 것 아닌가요?

3. 자본주의는 Human Nature에 기초하였다 비판하면서 정작 근거는 왜 인본주의적인 역사주의에 두고 있나요?

종합해서 따지자면 다른 사람의 잠자리를 불태워도, 옷을 배껴서 자신이 빼입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애초의 그사람의 것이 아니리 공유의 과정일뿐이니까요.

결국 모든물질의 그누구의 것도 아니라면 개인의모든활동에 대한 다른이의 통제와 지배는 정당화 될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창조하는 것과 노동력도 자신의 것이 아니니 자신의 노동과 창조행위는 언제나 누구에 의해 좌지우지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것들은 자신의 것이 아닐뿐더러 공유라는 정당한 행위가 부여된 것이니까요.

지금까지의 내용을 유추해보면 상호부조, 자율적 협동을 주장하는 것이 다입니다. 자율적 협동이란 이타주의 자체는 어느 역사에서나 이루어졌습니다. 그러한 이타주의 내지 자율협동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으므로 아나코 사회주의는 과학적이라 한다던지,

그것을 이익구조 운영과 분배및 관리조차 설명되지 않은 아나코 사회주의 검증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객관적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 주장입니다. 이타주의적 행동, 협동 하나도 한 개채의 생존을 위한 일시적 진화론적 전략인지(Evolutionary stable strategy) 아니면 오로지 영구적으로 무대가적인 선험적 행동인지는 관찰방식이라던지 학계의 해석이 각기다릅니다. 또한 인본주의가 아닌 단지 물질과 물질의 관계를 얘기하고 싶으시다면 이런 사례들에 대해 어떻게 해석을 낳을 수 있습니까? 단지 물질과 물질이 서로 작용하고 안하고의 차이이므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지 여기에 해석을 첨가하면 "인본주의"적 오류로 봐야되는 것 아닌가요?

결국 답변에서도 인정하셨듯이 제시하는 법칙,모델이 제시되지 않은체 좀더 사회가 나아지기 위해 "자율적 협동"을 권하고 선전하는건 사회운동, 이데올리기지 객관적 경험주의 검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ㄴ 아까전에는 짜집기 아니면 번역 같은 것을 한 적도 없고 만약 그랬다고 쳐도 도데체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그저 이타주의적인 행동이 아닌 정부와 같은 권위나 사유 재산이 없고 상호 부조에 바탕한 사회를 예로 드는 것은 충분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예로 드는 사화들은 시장과 정부 없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타심을 모든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human nature argument를 반박합니다. 아이슬렌드를 님이 예로 들은 것을 왜 아나코 공산주의에 쓰면 억지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아나코 공산주의를 사상으로서 기초로 삼는 사회들은 현대에 anarchist catalonia Rojava등으로 많았지만 아나코 자본주의는 사상으로서는 1960년도에 미국 오스트리아 학파의 머레이 로스버드가 창시했고 그것을 이데올로기로서 삼고 경제적으로 아나코 공산주의처럼 성공한 사회는 현대에 들어와서 없었습니다.http://www.anarkismo.net/article/4907 iroquois Confederation은 과거의 아나코 사회주의의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코 자본주의와 다르게 실제로 아나코 공산주의는 현대에 대규모 사회인 catalonia도 있었습니다.

제가 human nature을 말했을 때에는 자본주의 경제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겉 같은 모습들을 human nature라고 가정하고 그것에 "경제학"을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었고 님이 자본주의 경제학을 신을 숭배하듯히 해서 비판했는데 도데체 왜 수직적이고 권력이 소수에게 독점되고 있는 것을 인본주의적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익은 아나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별로 상관이 없고 교조주의가 생기는 순간 더이상 자유로워지지 않게 됩니다. 애초에 코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방법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이익을 중간에 필요하지 않고 애초에 자본주의와 생산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이익이 필요하다는 것은 도그마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작동이 됬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행위입니다.이타적인 행동과 상호부조는 오히려 그런 것들에 기반한 아나키스트 사회가 가능한 것을 보여줍니다.

consumer council이나 worker's syndicate같은 작은 직접민주주의적 조합들이 있으며 작은 자율적인 조합들의 네트워크이고 자체적인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gift economy로 사회가 작동이 됩니다. 모델은 직접민주주의적으로 자치적으로 코뮌들의 네트워크들이 gift exchange와 같은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고 자연적이라는 것을 도데체 왜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아나코 자본주의는 논리적 오류인 praxeology로 범벅이 되어있고 지나치게 어떤 마법이 일어나서 자본가의 초거대 모노폴리들이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아나코 자본주의자의 시각에서) 것은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정들을 만듭니다. 케인즈주의자가 아닌 자본주의 경제학자들고 "국가가 없는"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고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오히려 나쁘다고도 하였읍니다.그리고 자본주의 경제학같은 모델을 만드는 겉 자체가 애초애 뿌리부터 다르고 자체적으로 바텀 업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비슷한 것은 불가능하고 economic caculation problem은 아래에 반박이 있습니다. 애초에 실제로 작동한 경제 체제를 그저 막연하게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거죠.

그리고 물질은 누구의 겄도 아니니 자신의 창작이나 노동을 어떤 개인이 통제하고 억압해도 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소수가 그런 짓을 하거나 다른 이를 통제할 수 없죠. 누구도 다른 이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님은 창조와 노동을 잘못 이해하는데 개인이 만든 무언가가 그냥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가 모두가 만들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공유이기 때문에 소수의 독재나 그런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이 불가능 하고 애초에 공유가 아니라 개인이 다른 인격체를 억압하고 상호 부조가 아닌 서로의 협동이 아닌 일방적인 강제적인 독재이므로 공유가 아닌 독재입니다. 잠시 빌리는 것은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사회에서 free association으로 되어야지 일방적인 강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수가 서로의 수요에 따르게 직접민주주의적 합의를 통해 나눠 같는 겄은 일방적이고 직접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위계 질서인 납치와는 다르죠. 도데체 무슨 마약을 하길레 이런 말도 안되고 비현실적인 것들을 써대는 것입니까? 애초에 생산 수단이 아닌 물건들은 느슨한 사회적 약속으로 지켜지고 내가 님의 칫솔을 그냥 소유가 없다고 훔치지 않는 것 같이 비현실적인 사례들을 들고 있고 공동 창고에 있는데 도데체 왜 훔치나요? 그리고 공유는 서로 생산수단에서 직접민주주의적으로 함꼐 운영하고 함께 생산물을 공유하는 것은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개인이 다른 인민들을 억압하고 자신이 님이 말한 것 같은 불태우는 짓을 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평판이 나빠지고 개인은 절대 권력을 절대로 모두가 생산 수단을 공유하고 다른 인민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인민을 억압하고 possession을 일방적으로 불태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님이 썼던 논리는 실제 이론에도 맞지 않고 비현실적이고 현재까지의 아나키스트 사회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행위이고 자본주의 경제학을 무슨 과학으로 숭배하고 현실을 무시하는 개독교 신자 같네요. 아나코 공산주의가 실제로 작동한 사례들을 무시하고 그저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되는 예나 극단적인 교조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그리 괜찮은 비판적인 자세이고 논리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추측에 기반해 상대를 그저 토론 바깥에서의 일으로 "비판"하는 것도 말도 안되는 짓입니다.

님이 계속 운영구조나 이익이 어떻게 될건지 물어보는데 어떻게 되냐면 직접민주주의적인 한 조합이 다른 조합들과의 gift exchange 방식으로 생산품을 만들거나 일자리에서 일하고 공장 같은 곳에서의 생산품은 공동 창고에 있어서 필요한 이가 가져가거나 consumer council을 통해서 생산품을 서로 가져갑니다. 그러니가 협동조합들만 있는 세상이 비슷할 수도 있고요. 자본주의도 결국은 사상의 하나일 뿐입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학은 praxeology와 자본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받았으므로 그렇게 중립적이지 않고 국가와 기업의 비교는 경험주의적 논증이 아닙니다. 당연히 아나키즘은 사회를 바꾸는 사회운동이 될 수밖에 없죠. 아나코 공산주의가 자율적 운동과 자율을 사회 변혁에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님도 자본주의의 수직성을 반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도그마를 그 자신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건 퍼왔음 In "Why I Am Not an Austrian Economist", the self-proclaimed anarcho-capitalist Bryan Caplan admits that "Austrians have overused the economic calculation argument" and goes on to state that "current events do nothing to show that economic calculation was the insuperable difficulty of socialist economies. There is no natural experiment of a socialist economy that suffered solely from its lack of economic calculation." There has never been any empirical evidence that economic calculation was ever a difficulty for socialist economies - let alone a defining challenge rendering them impossible. Granted, a socialist economy could suffer without the possibility of economic calculation, but there is no historical socialist economy which ever collapsed solely due to it despite what some pro-capitalists would have us believe.---Mises himself once stated that, regarding his economic praxeology, "Its statements and propositions are not derived from experience. They are, like those of logic and mathematics, a priori. They are not subject to verification or falsification on the ground of experience and facts." Rejecting the scientific method, Mises is essentially stating that he made it all up and that his so-called "theories" are unfalsifiable on the ground of experience and facts. How any sane person can take such "theories" even slightly seriously is beyond my scope of understanding.---Despite all of this, many anarcho-capitalists and Austrian economists still contend that the economic calculation problem is a devastating challenge and apply it to all forms of socialist economic models - even completely libertarian ones. For example, despite not being centrally planned or involving government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distribution, some Austrian economists have contended that anarcho-communists would not have the ability to efficiently distribute resources without a market and price mechanism, because prices could not be obtained rationally - i.e. avoiding waste and inefficiency. In short, a socialist economy without money could not make rational production decisions. However, are rational prices within a market even reached with a price mechanism? How efficient is a price mechanism, and how accurate are prices within capitalism?---Joe is the CEO of a large corporation, and calculates the price of his corporation's capital goods based upon the cost of resources used in production - including employee remuneration and overhead costs. He determines the use of resources in production through monetary calculation based on market prices. Since profit is sought after in capitalism and Joe doesn't want to break even, he charges a price above and beyond the costs involved in production.

Mises assumed that without monetary prices to facilitate comparisons, decisions regarding the use of resources would be largely arbitrary because, supposedly, no information could be passed between producers beyond the final outcome of production. He believed that the final product is all that matters when evaluating use. It is true that without sufficient information it is difficult to determine the use-value of a specific good and allocate resources. That is, in order to determine utility one must know cost. However, price signaling can not measure social costs or the externalities involved in producing a good, leaving out or hiding information such as labor, ecological impact, etc. For one example, if the market price of A is $3 and B is $4, it's safe to assume that most people would choose A. However, what is hidden by the price is the high pollution cost of A whereas B is much more sustainable. Due to its cheaper quality and the poor working conditions involved in the production of A, it is more likely to fall apart relative to the more durable B. The question here is that if one knows this additional information which is not conveyed through the pricing mechanism, would they be willing to spend the extra dollar?

Therefore market price is not only ultimately driven by the profit motive, but it can only measure individual preferences among available options rather than values collectively enjoyed by everybody, let alone the actual costs involved in production. Since the price mechanism is based solely upon what is to be sold on an individual basis - solely upon the short-term preferences of consumers, it permits the production of goods regardless of any social or ecological cost and long term implications are not considered when a consumer makes a purchase.--Therefore, it can certainly be argued that all of the information necessary for rational decision-making in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resources is available outside of the reductionist factor of price. So how can the information required to make rational decisions regarding the use and allocation of resources be made? The use-value of any good or service can only be determined by those directly using it - that is, the utility to users of the end product is actually where value comes from, meaning that it can only be determined by many people dispersed throughout society. This "information problem" was a main argument against central planning, but it is obvious why anarchist-communism does not have this problem since it is inherently decentralized. The generation and conveyance of such information could be done through the decentralized, participatory planning of horizontal, cybernated networks of workers' and consumers' councils.

Rather than utilizing price signaling, signals could be passed through various nodes of exchange. For example, consumers' councils could record inputs such as what is demanded and pass this signal along to producers'/workers' councils, and these signals would be used to evaluate costs and increase efficiency by allowing different options and resources to be compared to each other. Thus economic decision-making is entirely possible without monetary calculation, even within a competitive market economy.--A contemporary example could be found within modern open source development. In some distributions of Linux such as Ubuntu, for every donation to the project a person also has a vote in the development of new features, categories which may be lacking, etc. With the Linux kernel, we all have options in which distribution or software to use, as well as the ability to develop our own. These options and abilities allow for greater participation within the decision-making and development processes.

While it is entirely feasible that such recording and signaling could be done by hand, it is probably obvious to anyone that modern innovations in technology and communication have made this process even more efficient. Back in the 1970s, the Chilean Salvador Allende's socialist government implemented what was known as Project Cybersyn. It was basically a primitive version of the internet which made projections based on incoming data. Unfortunately, it was eventually shut down by the capitalist-backed, fascist dictator Augusto Pinochet. However, before there was even an internet, it proved the vital role that the internet can play in the future of both economics and politics. In fact, the same Oskar Lange that "won" the economic calculation debate so many years ago has also been known to argue that the computer is even more efficient than markets at solving the multitude of simultaneous equations required for allocating economic inputs efficiently (either in terms of physical quantities or monetary prices).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미국에서 키배를 많이 해서 영어도 많이 쓴다, http://i2.kym-cdn.com/photos/images/facebook/001/157/961/a5d.png https://i.ytimg.com/vi/51Q3R5obXHs/maxresdefault.jpg https://pics.onsizzle.com/i-would-say-you-can-pull-the-lever-but-that-3622733.png


ㄴ 1-1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겉 같은 모습들을 human nature라고 가정하고" 대목이 뭔 소리인지나 설명좀, 1-2 애초에 모든 사유재산권은 본질적으로 독점적이며 둘째 생산수단을 갖는 것이 왜 수직적이고 권력적인지부터 설명해야죠 1-3 이익을 생각안할거면 생산은 왜 합니까? 내가 밥먹고 싸고 입고 즐기려고 생산하는건데? 왜 서로 직.민을 통해서 실현하는 것만 이타적이고 상호부조인지? 교환은 왜 상호부조가 아닌지?

ㄴ 2-1 인간행동학이 왜 오류인지나 밝히시고요 둘째 국가가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적 없습니다... 케인즈고 나발이고 오스트리언 외에는 경제학 다운 경제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왜 다른 경제학자를 인용하는지? 심지어 불평등이 무슨 말을 의미하는지는 알며 왜 나쁜지 설명이나 하시고요 심지어 bottom up이니 모델 타령하는 것 자체가 오스트리언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는 뜻입니다...

ㄴ 3-1누구의 것도 아니면 자기 신체도 포기하셔야죠? 자기 몸뚱아리는 잘만 움직이고 디시위키와서 키보드 모니터 마우스 잘만 누리고 사시는데요? 누구것도 아니면 디시위키 들어오지도 못하는데 뭔 헛소린지... 3-2 공유기 때문에 안하무인이 정당화되죠 공유라면서요? 내가 칫솔 써도 되니깐 칫솔 맘대로 해도 되죠 똥을 묻히든 오줌을 묻히든 나에겐 정당한 권리가 있으니깐요 그게 미덕이 아니여서 욕먹더라도요. 결국 자기가 불태워도 욕처먹는걸로 끝나지 같이 노동한것을 자기 멋대로 붙태워도 어떤 처벌도 안하는 정의없는 사회라는게 단번에 드러나네요? 사람 죽여도 욕먹고 끝나 폭파시켜도 욕먹고 끝나 사이코패스 천국 오지구요 애초에 느슨한 약속따위를 한것 자체가 스스로 정의justice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3-3 그리고 님은 강압 타령하시는데 뭐가 강압인지나 좀 밝히세요. 자기 욕구불충족이면 강압인가요? 왜 시장경제는 협동이 아니고 강제적인 독재임? 3-4 공동창고가 있는데 훔치는게 왜 발생하냐고요? 님은 옷을 흥부가족새끼마냥 100명씩 같이 입으시나요? 빵도 1천만명분을 같이 드실래요? 그 어떤 사회주의에서도 '소비'를 같이한다고는 차마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님은 그냥 처음부터 마르크스처럼 소비재는 개인이 누린다고 했어야 합니다. 왜 등신같이 소비재 공유 운운하는지? 그러니 칫솔 훔치는게 비현실적 사례라는 둥 대처도 못하는 거죠 3-5 자기야말로 사회주의 경제계산문제를 반박했다고 헛소리하는 둥 창조설 급 개독같고요... 작동한 사례가 있어봐야 가장 긴데 소련 70년이고 나머지 아나키즘은 채 10년이 안됩니다. 이걸가지고 자랑이라고 하시면....

3-5 다 떠나서 결국 생산수단 공유, 직.민을 통해 수요 맞춘다는데 완전 개소리죠 일단 저 영문에서 분권화 타령하는데 애초에 하이에크는 말로 표현할 수 도 없는 암묵적 지식으로 인해 소통 불가능성을 말하는겁니다. 그러니 분권화 타령하는건 웃긴거죠 더구나 컴퓨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초에 하이에크의 인위적 질서 개념만 알아도 저따위 반박 못합니다. 더군다나 가격 그 자체가 판단 가능한 가장 적합성 있는 정보인데 가격에 정보가 안들어가면? 이딴 소리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 경제계산 문제에서 1. 만약 우리가 모든 자원이 풍부하면 생산할 이유도 없습니다. 2 모든 생산요소만 풍부하다면 공유를 할 이유도 없습니다. 3 만약 생산요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면, 그리고 현실세계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안콤은 자기들 수요 공급을 민주주의로 어쩌고 하는데 그래봐야 해결이 안되죠 왜냐면 인간의 수요는 언제나 한계단위로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한단위의 노동으로 사과 2개를 만들고 한단위의 노동으로 배1개를 만든다고 쳤을 때 사과2개와 배1개중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직.민 해가지고는 아무 문제도 못풉니다. 설령 저 갯수를 20만개 10만개로 늘린다고 해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이 문제를 못푸는 까닭은 사과생산을 선호하는 사람은 한단위의 사과가 한 단위의 배보다 더 선호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더 선호하는 것을 포기하고 덜 선호하는 것을 만들라고 하면 그걸 택할건지? 그리고 정작 반대로 배 생산을 선호하는 사람은 한단위의 배가 한단위의 사과가 더 낫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과선호자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덜 좋아하는 것을 만들라고 하면 그걸 택할 건지? 반반 만들라고 해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사과1개 배 반개 만들어봤자 사람들은 사과2개를 한단위로 삼았기 때문에 배 반개에 들어간 기회비용을 아까워 할테고 배 1개를 한단위로 삼았기 때문에 사과1개에 들어간 기회비용이 아까운건 변함이 없습니다.

심지어 소비재 2개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대가리가 아픈 문제인데 수많은 소비재에서의 한계효용은 뭘로 정할 것이며 심지어 그 소비재에 들어가는 수없이 많은 생산요소는 무엇으로 정할 건지? 이런걸 민주제 따위로 정보 나눠서 해결한다는게 말이 되는지? 만약 기적같은 만장일치가 나온다면 해결되겠죠 결국 사상 그 자체의 힘으로 해결하는게 아니라 그저 운빨로 혹은 획일적인 체제에서만 가능한 거겠죠 그런데 그렇게 똑같은 거 생산할 거라면 자본주의도 충분히 해낸다는거 대량생산이야 자본주의 특기 아닌지?

3-6 맨 첫줄에서 "그리고 물질은 누구의 겄도 아니니 자신의 창작이나 노동을 어떤 개인이 통제하고 억압해도 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소수가 그런 짓을 하거나 다른 이를 통제할 수 없죠. 누구도 다른 이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가 불가능합니다." 이게 뭔솔?

ㄴ이건 아래 노동자 관계 항목에서 서술해주세요. 여긴 논증에 관한것이기때문에 오스트리아 학파랑 관련없는 논안입니다---Sheepnation (토론) 2017년 1월 13일 (금) 00:17 (KST)

ㄴ 계속 논제와는 상관 없는 내용을 꺼내고 계신데

역사적 사례를 주장하는게 아니라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역사적 사례가 빈약하다는 지적때문에 부가적으로 첨부한 것입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역사적 사례 링크는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렉시올로지는 막스베버와 선험주의에 영향을 받은 미제스의 오스트리아 학파 사상입니다. 프렉시올로지는 마셜로 대표되는 현대경제학과 다르며 요구하는 기준도 서로 다릅니다.

저는 오스트리아 학파와 달리 시카도 학파 아나코 캐피탈리스트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논증을 예로 들었으며 이는 노밸상 수상자인 뷰케넌등 많은 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리경제학이 요구되는 논쟁에서 프렉시올로지니 오스트리아 학파 로스바드가 무엇을 했냐니 같은 내용은 이 논쟁에서 관련없는 내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아무런 도난이나 침해는 없으며 모두 '공유'의 과정이라는 무결점 유토피아 주장을 되풀이하시네요. 칫솔의 사례경우 터무니 없으므로 침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바램'은 침해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도 않으며 이점은 개인의 대한 지표나 범죄팩터에 대한 추산이 불가능하며 이에따라 '상호부조','협동','민주의회'등 정황만 묘사하는 이데올로기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체적인 주장을 보면 카탈루냐 사례☞성공적 아나코 공산주의☞현실적이라는 삼단논법을 결론짓고 있네요. 역사적으로 이렇가 저렇다 하는 것도 논제에 관련없는 얘기지만 카탈루냐 사례는 역사적으로 아나코 공산주의와 맞지도 않습니다.

카탈루냐 사례, 이하 CNT연합은 스페인 전쟁동안 들어선 괴뢰정부일뿐입니다. CNT가 들어서면서 현지의 많은 주민들은 "반혁명주의자", "부르주아"라는 명목으로 인민제판을 당하며 학살당했습니다(주민들의 증언과 많은 문헌자료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CNT는 집권기간동안 무결점 아나코 공산주의 사회를 위해 살인범죄 추산을 막기위한 명목으로 공식적인 살인범죄 기록을 막고 은폐해왔습니다.이를통해 명목상 '자율적 협동'을 주장한 아나코 공산주의는 개인의 침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기준없이 무지했으며 실제로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CNT의 리더 Caballero와 반파쇼 군사위원회를 주축으로 FAI가 만들어지는데 사실상 정당과 다름없는 중앙당이 만들어집니다. 그중 그렇게 아나코 공산주의에서 강조되었던 민주의회는 서기관 자리를 따로 만드는 등 북한의 보여주기식 '비판총회'처럼 기존의 공산주의 중앙당위원회와 다를 바 없는 숙청의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나중엔 서기관 Prieto를 중심으로 반대파들은 모두 숙청당하고 모든 공장, 사법체계, 보건체계 모두 하나의 당으로 독점됩니다. 결국 CNT☞FAI☞Generalitat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의 대표자를 뽑는 식의 중앙집권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3]


더군다나 경제적 효율성도 떨어져 집권기간내내 불황만 지속되는 등 아나코 공산주의의 근거로 사용되기에는 미흡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토론동안 계속 주장반복만 하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역사적 사례는 지우고

제가 제시한 논증 링크로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기존의 좌파 아나키즘에 비해 구체적인 모델제시와 논증으로 시카고 학파적 접근을 통해 주류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에 이점이 있다"의 논지로 수정하는 것으로 합의하면 되지 않을까요?

ㄴ 내일에 돌아오고 반박할 거리가 넘쳐나지만 오늘은 귀찮아서 내일 돌아온다. ㄴ 귀차니즘과 갓수가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 토론을 안함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자본가 노동자 관계

[원본 편집]

전통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은 자본주의와 가난의 의해서도 억압당한다고 믿는다.아나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계약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정작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관계를 무시한다. 실질적으로 아나코 사회주의 같이 사회가 진짜로 존재하고 작동한 적도 없다. 그리고 모든 서비스를 사유화하는 것은 결국 자본가와 있는 자가 폭력을 소유하고 새로운 정부와 국가를 만들게 된다. 왜 "아나코" 자본주의가 아나키즘이 아닌 이유(영어) http://theanarchistlibrary.org/library/the-anarchist-faq-editorial-collective-an-anarchist-faq-07-17

자본주의, 이하 자유시장은 개인간의 거래와 개인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개인을 억압한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활동을 보장하자는 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모순과 다름없다.

예를 들어 상대방과 내가 물한컵과 라면한박스를 거래하게 된다면 이는 개인을 억압하게 되므로 악덕자본가가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논리는 68년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즐비하게 된 구조주의 논리에 비롯하게 된것인데 물질을 파괴하는 것이 계급간의 수평구조를 이룰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통해 자본주의(이하 자유시장) 같이 개인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이 개인을 구원할 수 있다는 금욕주의로 결론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절대적 신학과 유사한 교조성을 가지면서 사회주의자들의 대표적인 "자본비판" 논리로 애용되고 있다.

개인의 미시적인 관점을 논하는 자유시장에서 '자본가', '자본'과 같이 막연한 표현으로 억압된다고 서술되어진다.

물론 아나코 캐피탈리스트 입장에서도 현대혼합경제의 경우 비판의 대상이다. 자산보증도 없는 화폐시스템은 약속될 수 없는 계약이기때문이다. 아나코 캬피탈리스트는 정경유착의 정실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시장체제를 말한다.

상대방을 침해하지 하지 아니하는 모든 평화로운 활동인 비침해성 공리는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의 순수자본시장을 뒷받침한다

비판에 대한 반론에 대한 반론

[원본 편집]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이 자본가들한테 소유된 체제이다. 자유 시장 따위는 사실상 허상이고 실질적으로는 수직적인 구조가 자본주의에서 존재한다. 개인은 오히려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자체적으로 유기적 역활이나 창이성을 만들기 보다는 작업장에서 상위 계층에서 명령을 듣고 폭력과 국가가 자본자를 수호하므로 자유와 "자연적"이지도 않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이나 사업장을 소유하는 사람이지 물물교환이 아니다. 자본자와 결국 상위 계층을 위한 정부가 강제적으로 대부분의 자원을 소유하는 수직적인 체제이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경제적 억압을 한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기의 일자리를 자기가 결정에 민주적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소수에게 자본과 자원이 집중된다. 금욕주의와 같이 노동자는 그저 절제하고 기업에서 목소리가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동해야 한다. 오히려 아나키즘 아래에서는 개인의 창조성이 물질적 억압이나 수직적 억압에 파괴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일자리 안에서 자치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나코 공산주의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나코 공산주의는 사회에서 모든 이가 수평적으로 일어나서 자체적인 자치 집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물질이 개인의 자유에서 중요한 역활을 한다. 개인이 아니라 비슷한 위치를 사회에서 가지고 대부분의 자원을 소유한 계층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기기 때문에 자본가가 분명히 자본주의에서 생길 수밖에 없다. 비침해성 공리는 자본주의의 수직적 구조를 무시한다. 억압될 자유일 뿐이다.

재반론

[원본 편집]

윗글의 주장이라곤 반론에서 지적했듯이 자본가, 자본, 노동자등 막연한 단어들의 선언들로만 채워져있을뿐이다.

자유시장은 개인과 개인과의 상황일뿐이다. 수많은 시장에서 행해지는 개인과의 교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뉘어지는 기준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의미의 선언은 먼저 자본가를 정의하지 않고선 아무의미 없는 순환논증의 오류를 반복할 뿐이다.

자본주의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하자면 누구나(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 할 수 있으며 그에따라 개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자는 주의이다.

누구나 소유할 수 있다면 모든 지구상의 사람은 '자본가'가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무엇이든 소유할 수 없는 '비자본가 노동자'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재반론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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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거나 아닌 사람들로 나뉘는데 소유하는 사람은 자본가 이다. 자본가의 정의는 자본을 소유하는 사람이란 정의가 있디. "누구나"는 결국에는 소수가 이미 독재를 하고 독점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본가와 노동자(화이트 컬러도)와의 관계는 수직적이고 "자유"시장은 그저 수직적인 시스템이다. 자본이 자본가와 노동자를 가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산 수단이 없으므로 자본가가 아니고 노동자는 생산 수단이 없는 사람이다. 아나코 공산주의 에서는 공장을 민주적으로 다른 이들과 운영한다. personal possession 이랑 private property는 private property는 생산 수단이고 폭력이나 정부에 의해서 보호되므로 다르다.

그 반론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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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봐도 논증이 개판이다. 애초에 자본가는 화폐를 통해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그만이다. 즉 은행에서 돈빌리면 그만이다. 더군다나 그 수직 수직 타령하지만 생산수단의 결정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부터 논증해야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수직성의 위엄에 대해서 도저히 어떤 설명도 찾아볼 수 가 없다.  결국 private과 personal라는 우덜식 기준을 가지지만 정작 모든 노동력은 본질적으로 생산수단으로 전환가능하다는 점에서 private과 personal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은 부wealth가 아니라 인간이 행동하는 필요한 수단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 철학에 대한 경박한 이해가 잘 드러난다.

ㄴ 자본가는 공장이나 대규모의 생산 수단을 독점하기 때문에 다르다. 노동자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고 결국 운이 좋아서 자본가 된다고 쳐도 여전히 다른 노동자를 작취한다. 노동력이 그냥 있어서는 죽도 밥도 안돼지만 공장이나 도구나 그런 것이 있어야 무언가가 된다. 너의 칫솔로는 새 칫솔을 만들 수 없지만 공장은 가능하다. 그러면 공동재산을 가졋던 diggers와 다른 아나키스트적인 사회들은 무엇이 되냐? 회사의 비자윻적인 체제에 대한 경박한 이해가 느껴진다.

ㄴ 모든 사유재산은 언제나 독점적이다. 왜냐하면 행동 자체는 언제나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공유체제 역시 독점적 체제를 갖는다. 기계를 몇백명 몇천명이 모여서 같이 쓰지 않는다. 어느 각 부분을 어느 시간대에 나눠서 독점적으로 쓴다. 공장이나 도구 소유자가 비소유자보다 더 잘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소유자가 비소유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생산요소는 그 보완재가 한단위가 완벽히 모여야만이 생산이 이뤄진다. 한 단위의 노동을 노동자가 거부하면 모든 생산은 올스탑이다. 누가 더 우위에 있나?

자유시장은 자기소유권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자신과 자신의 몸에 대해 권리가 없다는 것은 남을 해치던 침해하던 상관없다는 파괴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즉 개인은 모두 소유자인 것이다.

독점에 대해서는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이 반대한다. 소유가 곧 독점이지만

독점을 강제로 소유권을 빼앗고 점거하는 카르텔이라 가정한다는 개념이라면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이미' 독점되어 있는 독점체제에 반대한다.(아나키 과도기적 단계에는 임시민주정으로 소수만의 독점자본 해체후 지분율 공유를 통한 순수시장형성)

위의 글은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자본을 소유를 하는자가 자본가라면 자본은 무엇인가?

자본 즉 거래수단 ,상품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물질을 이루지않는 비자본가 노동자는 성립될 수 없다.


ㄴ기계는 많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동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독점적이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 협동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물질적인 위협이 있기 때문에 노동을 할 수밖에 없고 한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 결국 자본이 집중되어 있어서 자본가가 더 유리하고 공권력도 자본가 손에 있다. 자본은 상품을 만들 때 필요한 금용적이나 물질적인 공장 같은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 몸에 대해서 자유롭고 바깥에서 억압을 피하고 그저 혼자이고 싶다면 자본주의는 우리를 계속 물질을 잃고 일자리를 잃는 공포에 계속 시달리개 만든다. 자신을 진정하게 소유하면 자신 자체를 자유롭게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는 오히려 우리들한테 반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 지구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 사유도 없고 어느 개인이든 그냥 자기가 쓸 수 있는데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못 사용한다는 것은 도둑질이고 다른 개인들에 대한 공격이다. 단순 소유와 생산 수단은 새로운 wealth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지 아닌지가 차이점이다. 행동들은 모두 상호보완적이다. 개인이 아니라 결국에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질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ㄴ집단적으로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결국 독점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누구는 전적으로 다 갖고 누구는 전적으로 갖지 못하는 것이 왜 용인되서는 안되는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왜 협력에 들어가지 않는가? 노동자 만큼이나 자본가도 물질적 위협을 겪는다. 파산할 위험, 손해볼 위험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면 이제 노동자와 자본가의 물질적 위험을 어케 비교하냐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단순한 편애일뿐이다. 더굳나나 노동자 역시 다른데서 일하면 그만이다. 어짜피 자본가가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적극적 자유를 변호하려는 비약을 또한번 시도하는 것이다. 자기의 물질적 어려움이 어째서 자기 소유권을 실현하지 못한단 말인가? 노동을 하든 무엇을 하든간에 개인은 자기소유권을 여지없이 실현한다. 지구가 왜 누구의 것이 아닌가? 지금은 누구의 것이 아니지만 태생적으로 소유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소유권은 언제나 인간행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소유 공공 소유 논리를 가져오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무참한 짓밟기와 다를바가 없다. 오히려 그토록 주지하는 자기소유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행동이 상호보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말 그대로 보완일뿐이지 누가 누구의 행동을 짓밟는 것이 보완이라고할 수 없다. 더군다나 새로운 부wealth마저도 모호한 개념이다. 설마 생산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는가? 생산은 생산요소의 조합combine과 전환transforme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것을 변형한다는 의미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부란 존재하지 않는다.

ㄴ자본재 즉 생산수단을 기계에 한정짓는 것이 그 주장의 한계다. 토지, 부가가치, 주식등 모든 효용가치를 생각한다면 단순하게 노동자 자본가 기계로 생각하는 것은 조잡한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심지어 마오주의자들까지도 노동자 기계공장 논리의 한계를 인정한다)

생산재와 소비재는 경제에 대한 1차적인 시각밖에 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현재재와 미래재이다.

물질은 누구의 것도 아니면 남의 집을 불태우던 남의 얼굴을 때리건 죽이건 상관없다는 것인가?

우생학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에대해선 반론하지는 않겠다. 물질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고 작용하나 작용안하냐의 차이일뿐이라 한다면 할말은 없다

ㄴ내일 다시 돌아오니까 이겼다고 세리머니 하지 마라

ㄴ ㅇㅋ

솔직히 안콤식 confederation이 이 나쁘다곤 생각안함. 다만 컨페더레이션이 자유가입이면 좋은데 강제협동과 강제가입에 대해서 반대하는거지

일단 다른 토론을 끝낸 다음에 돌아오겠다 (추가적인 사안은 토론항목으로 가주세요. 토론:아나코 캐피탈리즘)

자생성에 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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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상이 가진 장점은 사회주의에 기반한 아나키즘에 비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기존 아나키즘과는 달리 지금 당장이라도 기존의 체제를 대체해도 될만한 경제학적, 정치학적 이론을 다져놓은 상황이다. [4]

ㄴ 경제구조의 복잡함 다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자유시장하면 자생적 원리에 따라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얼탱이가 나간 사상이다.

가령 중앙정부가 사라지면 자원이나 기술이 빈약한, 소위 유로파식대로 말하면 똥땅인 곳과 잘 개발된 산업도시가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헬조선만 예시를 들어도 소비도시인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은 5%도 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두길.

가끔 호주에서 안캡사회가 만들어졌다고 설레발치는 것들 있는데 여긴 밥 호크 정부 시절에 민영화로 절약한 돈을 복지에 재투자했다. 즉 제 3의 길이 성공했다고 봐야지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은 이 모든 문제가 사실 아나키즘의 한계다. 아나코자본주의는 여기에 상속문제, 자본적 지배구조, 사회적 책임문제 등등 문제점 가미한거고

ㄴ 경제구조의 복잡하니깐 자유시장에 맡겨야 하는 거죠 복잡성이란 선후 혹은 인과관계가 선형적이지 않다는 말인데 중앙정부 같은 일원적 혹은 일방향적 또는 하향식 질서가 먹힌다고 보는게 웃긴거죠 애초에 복잡성이란 것 조차 미시적인 인간들이 자기 스스로 구성해내는 질서 창출에서 오는데 그걸 외부에서 꼼지락 거려서 조정하겠다고요?

어짜피 서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도시는 원전에 의존하는데 중앙정부에서 멋대로 날려쓰는 돈 다 끌어모아서 원전이나 화석에너지에 투자하면 됩니다. 물론 자연에너지에도 더 많이 투자할테고요

ㄴ자유시장적 경쟁체제는 문제유발 가능성을 항상 열고 있습니다. 해운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손놓다가 기간산업 주저앉고, 영남권 경제 파토나면 시장이 어떻게 해결할건지 방안좀 제시해주세요. 경제에 최소한으로라도 안전망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인정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자원의 불균형성이나 상속문제, 무책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관해 낙관론으로 일관하는 비현실적 사상이고요. 국가가 사라지고, 중앙은행도 사라져 극단적 프리마켓이 펼쳐지면 기업이 알아서 사회문제를 신경쓸거라는 자생성은 한번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돈을 다 끌어모아 원전이나 화석에너지에 투자하고, 자연에너지에도 투자하는 총괄은 시장이 자생적으로 하나요? --Brute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20:09 (KST)

그리고 비판이 달리면 무조건 토론으로 옮겨놓고, 찬양 일색의 문장만 남기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고나리하시나요?


ㄴ 자원의 불균형성을 해결하는게 시장입니다 기업이 알아서 하는게 아니라 바로 가격을 통해서 하는 겁니다. 불만있으면 막연하게 자생성이 없다느니 하면 그건 그냥 자의적인 자기 주장이지요 그리고 원전 화석에너지가 지금까지는 중요한 사업이여서 국가가 해온건 사실인데 왜 국가가 없으면 안된다는 근거는 정작 없네요 지금까지 국가가 해왔으니 안캡은 안된다는 건가요? 역사주의도 아니고... 자유시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정작 국가가 가진 문제는 그냥 은폐하고 있고요

그리고 문제라고 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게 기껏해야 지역경제 문제인데 애초에 자유시장이 주장하는 것은 보편적 다수의 점진적인 부wealth를 끌어올린다는 것이지 특정 주체의 소득의 불변동성이 아니기 때문에 언급해야할 하등의 이유도 없죠 마치 가장의 소득이 줄어 나머지 구성원의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를 묻는 것과 어리석은 질문이죠 자유시장은 끊임없이 더 나은 소비재 증대를 통해 가난한사람이라도 충분히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자본재의 증대로 취직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겁니다 영남 지방에서 소득이 줄었다? 그럼 영남에서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게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죠 해운 산업이라는 근간산업이 빠졌으니깐요 마치 직접적인 무언가를 주지않으면 개차반일 것이라는 생각이 바보같은 것이죠 이제 남는질문은 그럼 어떤 방식으로 잘사냐고 묻는게 전부인데 자유시장은 특정 인간이나 집단에게서 사회발전이 모색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분산된 주체들끼리 모색하는 겁니다 애초에 특정한 누군가에게 방법을 운운하는 거 야말로 전형적인 하향식 중앙집권적 방식이죠 즉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해야 알 수 있는 것을 특정 인물(의 정신)에 의탁하는 전근대적인 것이죠. 그래도 방법을 조금이라더 알고 싶다면 경영학을 공부하시면 됩니다


ㄴ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아니라도 중앙은행 폐지는 주류학계에서도 주장되고 있습니다. 연준과 더불어 중앙은행의 권력이 강화된 시기는 세계대전 전쟁을 빌미로 강해진 이후 100년이 채 되지도 않습니다. 물론 자유시장이 모든일을 해결하는 유토피아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최상이 아니라 최적의 환경이라는 것이죠. 자유시장에서 개인이 사업실패를 한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책임지면 됩니다 하지만 거기서 몇몇의 양적양화를 위해서 보조금을 물리고 아무런 보증도 없이 가격만 올려서 버블만 만들게 되고 후에 받을 데미지만 축적받게 되죠. 즉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을 연쇄효과로 모두 무너져 내리게 하는 것이 정부개입이라는 말입니다.

영남권 단지가 어쨌니 저쨌니 하시는데 그거야말로 정부가 자초하는 일입니다. 어디어디 지방 나눠서 산업단지를 나누고 정부보조금으로 공장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불균형을 초래합니다. 미국을 봐도 막대한 세금으로 대규모 플렌테이션으로 한곳에만 집중적으로 공장을 짓게하는 켄터키나 아니면 모터 산업의 디트로이드를 보면 한가지 산업에만 의존적이라는 것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규모 산업이 나쁘다는말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시장 활동이 커질 수록 산업도 커지게 되죠. 하지만 문제는 적자를 감안하면서도 의존적인 산업만 만들게 한다면 시장과는 상관없는 가격상승과 폭락이 만들어지고 소비균형은 깨지게 됩니다. 이에대한 결과는 교육,복지,범죄등 많은 부분에서 격차를 보여주게 됩니다. 앞서말한 켄터키나 디트로이드의 경우 이런 심각한 불균형이 문제가 되고 있으며 정부는 이런문제에 대해 오히려 개입의 여지만 늘리려 하는 밑바진 독에 물붙기식의 악순환만 반복하고 있죠. 정부개입은 가격상승의 여지만 남겨둘 뿐입니다.---Sheepnation (토론) 2017년 3월 23일 (목) 16:15 (KST)

  1. 위키백과에서는 극우 이념이라고까지 나온게 아나코 캐피탈리즘입니다. 물론 한국어위키백과이기 때문에...
  2. One of these radical changes was the beginning of large-scale murders of people believed to be supporters of the Nationalists. In most cases, these supporters had taken no specific action to assist the Nationalist rebellion; they were singled out for their beliefs, or what people guessed their beliefs were. As Bolloten explains: "The courts of law were supplanted by revolutionary tribunals, which dispensed justice in their own way. 'Everybody created his own justice and administered it himself,' declared Juan Garcia Oliver, a leading Anarchist who became minister of justice in November 1936. 'Some used to call this "taking a person for a ride," [paseo] but I maintain that it was justice administered directly by the people in the complete absence of regular judicial bodies.'"[7] This distinction no doubt escaped the thousands of people who were murdered because they happened to have political or religious beliefs that the Anarchists did not agree with. "'We do not wish to deny,' avowed Diego Abad de Santillan, a prominent Anarchist in the region of Catalonia, 'that the nineteenth of July brought with it an overflowing of passions and abuses, a natural phenomenon of the transfer of power from the hands of privileged to the hands of the people. Bolloten's account of the Anarchist militants' wave of murders is well- corroborated by other sources. Thus, Hugh Thomas' The Spanish Civil War (a work which Bolloten takes issue with on a number of points) explains that: "All who could conceivably be suspected of sympathy for the nationalist rising were in danger.
  3. The FAI, moreover, kept a close and constant supervision over the unions of the CNT, often threatening to use force to prevent deviationist trends when argument failed. To be sure, this domination - or at least attempted domination - by the FAI was not always openly acknowledged by the CNT and FAI and indeed was at times emphatically denied, but it was frankly admitted after the Civil War by other leaders of the CNT."Fraser corroborates Bolloten's remarks. Josep Costa, a CNT textile worker explains, "'The FAI was acting like a political group within the CNT, talking of liberty and acting like dictators...'"Sebastia Clara, a dissident treintista CNT member, adds, "'Before the 1920's, the CNT was an organization in which the masses could express themselves democratically. Afterwards, this was no longer the case. Things changed with the creation of the FAI in 1927. It was they who now imposed their decisions...'" While this burgeoning authoritarianism in the guise of democracy makes it easy to understand how the Anarchist leadership often deviated from the viewpoint of the rank-and-file, the fact that the FAI was noted for its ideological purism makes its numerous deviations all the more puzzling.
  4. 이에대한 경험주의적 논증 [2], 역사적 사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