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하이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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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 또 오스트리아학파 소속이며 그 학파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친척 중에 비트겐슈타인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노예의 길을 출간했는데 계획경제가 결국 폭정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유시장을 강조했고 케인스 vs 하이에크처럼 케인스의 라이벌로 엮이기도 하지만 정작 하이에크 본인은 케인스를 무척 존경했다.
1947년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를 창립했는데 단독 창립자는 아니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978년 덩샤오핑의 초청으로 그를 만나서 중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자문했다. 당시 중국은 여전히 계획경제에 얽매여 있었고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하이에크는 이에 대해 농민들에게 사유재산을 보장하라고 권했다. 이후 중국은 이전보다는 자유로워졌지만 대신 세계 GDP 2위 수준으로 올라와서 한국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다. ㅆㅂ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거 봐, 내가 뭐랬어!"라고 짧게 말했다고 한다. ㄷㄷㄷ
향년 만 92세로 엄청 장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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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복지국가, 단일세를 옹호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