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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오직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물질이 관념 등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선이고 우월하다고 간주하는 사상. 여기서 물질은 기본적으로 관념과 별개인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정의상 유물론자는 객관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유물론은 기본적으로 기계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나뉘는데 구체적인 사항은 아래에서 서술한다.
== 역사 ==
=== 전근대 ===
유물론의 맹아는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고대 인도 및 중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대 인도의 경우 차르바카학파가 물질이 존재의 근간이고 영혼도 물질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영혼불멸 및 윤회 등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교]] 등은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오히려 계속 고통을 이르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유물론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불교 등을 반박하려고 했다.


어떤 병신 새끼가 실재론이랑 동의어라고 써놨는데, 실재론이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개념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자백가 대부분이 유물론적 경향을 띄었는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법가]]다. 법가 측에서는 미신과 제사 등을 특히 경계하면서 이런 행위를 즐기다간 국가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시대 후에는 인도에서 불교가 유래하고 도교사상이 성장하면서 이전에 비해 유물론이 쇠퇴했지만 여전히 왕충과 같은 유물론적 사상가들이 꾸준히 나타났다.


미개한 똥양 철학과 위대한 서양 철학의 차이점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기원전 6세기부터의 초기 철학자들은 매우 유물론적인 편이었고, 관념론 철학자들은 오히려 나중에 나타났다. 특히 [[플라톤]]이 나타나면서 유물론이 상당히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 등이 유물론의 명맥을 이었다.


똥양철학은 좆도없는 관념론을 기반으로하고
이후 테르툴리아누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은 오히려 유물론 성향에 가까웠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관념론과 결부지으면서 이러한 경향이 한동안 잊혔다.
=== 르네상스 및 계몽주의 ===
그러다가 르네상스를 전후해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문헌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그 사상이 유럽 사상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유물론자들은 기존의 스콜라철학에 대치됐고, 어떤 경우에는 범신론 내지 무신론에 경도됐기 때문에 이따금씩 교계의 탄압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현상들도 과학적으로 규명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점차 현상들을 물질로 환원하기 시작하면서 유물론이 더욱 발전했다. 이 시기 급진파는 생명현상도 기계의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나중에 기계적 유물론자 혹은 그저 기계론자로 불린다.


ㄴ 이기론 사단 칠정 가지고 싸우던 조선 성리학자들은 기가 정신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해서 논쟁을 벌였나 보다.
이 시기 유럽의 철학 학파로 따졌을 때 경험론과 합리론에서는 각각 [[토머스 홉스]], [[바뤼흐 스피노자]] 등이 유물론적 주장을 폈지만, 18세기에 각각 조지 버클리,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이에 반대하면서, 경험론과 합리론 모두 유물론을 쇠퇴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유물론의 명맥은 계속됐고, 더 나아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정치적 영향까지 본격적으로 끼치게 됐다.
=== 19세기 이후 ===
19세기 독일에서는 헤겔 청년파가 헤겔의 변증법은 받아들이면서도 관념론은 거부하고 대신 유물론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 청년파 역시 관념론에서 철저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더욱 유물론적인 사상을 전개했다. 동시에 이들은 기존의 기계적 유물론을 속류 유물론이라고 비판하면서, 현실은 기계적으로 어떤 틀 안에 갇힌채로 진행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틀을 깨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유물론의 종류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하는데, 사실 마르크스 본인은 이러한 표현을 쓰지 않았고, 마르크스 사후에 생긴 명칭이다.


서양 철학은 유물론을 기반으로 하는것이다.
20세기 초에는 변증법적 유물론 내부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전자]], [[방사능]]같은 기존의 원자 개념으로는 해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발견되자, 다름아닌 [[레닌]] 본인이 물질이라고 함은 단지 원자로 구성된 것만을 가리키는게 아니라 객관적 실체 모두를 통칭하는 것이라고 정의 자체를 수정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이르키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물론 이와는 구별되는 유물론의 분파들 역시 명맥을 잇고 있다.
 
ㄴ 칸트 헤겔 의문의 똥양 철학자행
 
유물론에서 지식을 검증할 때는 대응설<ref>실제로 관찰되는 현상과의 일치 여부</ref>의 방법을 사용한다.
 
ㄴ 마찬가지로 개소리. 진리 규준으로서의 대응설은 '사물과 오성의 일치'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언급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있는 것이 인식에 대응되고 없는 것이 무지에 대응된다는 플라톤에서도 보이는 역사 깊은 이론이다. 관념론 철학자들이 댕청하게 내가 보는 게 그대로 진리요 이 지랄할 것 같냐?
 
물론 [[사르트르]] 같은 서양의 관념론 철학자도 있기는 하다.
 
ㄴ [[실존주의]]를 관념론으로 둔갑시키는 신박한 개소리이다. 시발 키르케고르도 관념론자냐?
 
[[플라톤]]은 서양의 대표적인 관념론 철학자이다.
 
ㄴ플라톤은 실재론자다. 플라톤이 어느 책에서 이데아가 머가리 속에나 있다고 말하냐?
 
그러나 똥양에서 말하는 철학적인 관념론 대부분이 좆도 병신 같은 것인 게 행복 불행은 니 새끼가 느끼기 나름이라고 지랄하는데 개지랄이다.
 
ㄴ 근데 맹자가 무항산 무항심이라 그랬는데?
 
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적 팩폭 지렸구연
 
'실재론'이라는 개념이 오남용되기 쉬운데 이건 여기서 '실재'가 무엇을 지칭하느냐의 구분으로 해결될 수 있다. 우선 '''중세의 실재론은 보편자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니 플라톤의 이데아론 또한 여기에 들어간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위시한 교부 철학이 플라톤에서 비롯되었고. 반면 '''근대의 실재론은 외부 객관 세계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스콜라 실재론에 반대되는 건 유명론(唯名論), 즉 "개체만이 실재하고 보편은 그 개체에서 추상하여 얻은 명목일 뿐이다."는 개념이고, 근대 실재론에 반대되는 것이 ㅡ특히 독일의ㅡ 관념론 즉, 절대적 주체성을 중심으로 성립하는 유심론으로서 유물론에 반대될 만한 분류가 되겠다.
 
==불교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진즉에 유물론과 유심론 양단을 배격하면서 그 유명한 '중도'를 설하신 바 있다. 당시 범아일여의 [[윤회]] 논리가 지배하던 [[인도]]에선 전복적 사고는커녕 순한 양같이 선업만 강제되는 풍조가 만연했는데, 그러다 보니 [[니체]]가 가장 경계한 현세에의 상대적 경시 또한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육사외도(불문의 정도를 벗어난 여섯 스승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당대 베다의 권위를 인정치 않았던 학자들을 일컫는다) 중 하나였던 아지타 케사캄발라라는 유물론자가 신풍을 일으키는데, 당연히 현세 허무주의의 기반인 윤회 논리를 공격해 현생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갈 뿐 선업도 악업도 실재가 아니라고 하였다.
 
바로 여기서 아지타가 또 하나의 극단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싯다르타의 생각이었다. 현생뿐 더 이상의 지속이 없으니 현세에 온전히 집중하자는 취지와는 거꾸로, '''현생뿐 더 이상의 지속이 없으니 인생 막 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현생의 무게를 거의 공기 수준으로 만들어버릴 위험까지 발생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물론이라는 일반론은 그 규모만큼 현상적 이해를 대폭 넓혀줄 수 있지만, 또 그만큼 추상되는 '실제', 특히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주관적ㆍ실존적 영역 전체에 대한 인식을 심히 무시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말하자면, "세계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현상들의 집합"인데 유물론은 임의적으로 그 세계의 상 절반을 덜어내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세상의 실존적 고통 제거가 목표인 싯다르타에겐 너무나 치우친 견해일 수밖에 없었다.

2026년 6월 25일 (목) 18:30 기준 최신판

유물론(이)라는 문서를 누군가가 싹 갈아엎었습니다. 예전 문서랑 좀 다를 수도 있으니 적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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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관념 등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선이고 우월하다고 간주하는 사상. 여기서 물질은 기본적으로 관념과 별개인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정의상 유물론자는 객관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유물론은 기본적으로 기계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나뉘는데 구체적인 사항은 아래에서 서술한다.

전근대

[편집 | 원본 편집]

유물론의 맹아는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고대 인도 및 중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대 인도의 경우 차르바카학파가 물질이 존재의 근간이고 영혼도 물질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영혼불멸 및 윤회 등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교 등은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오히려 계속 고통을 이르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유물론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불교 등을 반박하려고 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자백가 대부분이 유물론적 경향을 띄었는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법가다. 법가 측에서는 미신과 제사 등을 특히 경계하면서 이런 행위를 즐기다간 국가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시대 후에는 인도에서 불교가 유래하고 도교사상이 성장하면서 이전에 비해 유물론이 쇠퇴했지만 여전히 왕충과 같은 유물론적 사상가들이 꾸준히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기원전 6세기부터의 초기 철학자들은 매우 유물론적인 편이었고, 관념론 철학자들은 오히려 나중에 나타났다. 특히 플라톤이 나타나면서 유물론이 상당히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 등이 유물론의 명맥을 이었다.

이후 테르툴리아누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은 오히려 유물론 성향에 가까웠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관념론과 결부지으면서 이러한 경향이 한동안 잊혔다.

르네상스 및 계몽주의

[편집 | 원본 편집]

그러다가 르네상스를 전후해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문헌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그 사상이 유럽 사상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유물론자들은 기존의 스콜라철학에 대치됐고, 어떤 경우에는 범신론 내지 무신론에 경도됐기 때문에 이따금씩 교계의 탄압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현상들도 과학적으로 규명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점차 현상들을 물질로 환원하기 시작하면서 유물론이 더욱 발전했다. 이 시기 급진파는 생명현상도 기계의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나중에 기계적 유물론자 혹은 그저 기계론자로 불린다.

이 시기 유럽의 철학 학파로 따졌을 때 경험론과 합리론에서는 각각 토머스 홉스, 바뤼흐 스피노자 등이 유물론적 주장을 폈지만, 18세기에 각각 조지 버클리,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이에 반대하면서, 경험론과 합리론 모두 유물론을 쇠퇴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유물론의 명맥은 계속됐고, 더 나아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정치적 영향까지 본격적으로 끼치게 됐다.

19세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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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에서는 헤겔 청년파가 헤겔의 변증법은 받아들이면서도 관념론은 거부하고 대신 유물론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엥겔스는 헤겔 청년파 역시 관념론에서 철저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더욱 유물론적인 사상을 전개했다. 동시에 이들은 기존의 기계적 유물론을 속류 유물론이라고 비판하면서, 현실은 기계적으로 어떤 틀 안에 갇힌채로 진행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틀을 깨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유물론의 종류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하는데, 사실 마르크스 본인은 이러한 표현을 쓰지 않았고, 마르크스 사후에 생긴 명칭이다.

20세기 초에는 변증법적 유물론 내부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전자, 방사능과 같은 기존의 원자 개념으로는 해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발견되자, 다름아닌 레닌 본인이 물질이라고 함은 단지 원자로 구성된 것만을 가리키는게 아니라 객관적 실체 모두를 통칭하는 것이라고 정의 자체를 수정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이르키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물론 이와는 구별되는 유물론의 분파들 역시 명맥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