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지드 1세
| 로마→ 이슬람 제국 치하 이집트 군주 목록 →아이유브 칼리파 목록 | |||
| 정통 칼리파 641-658 |
2 우마르 | 3 우스만 | 4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 ||
| 우마이야 658-750 |
자립 아므르 이븐 알 아스 | 1 무아위야 1세 | 2 야지드 1세 | 3 무아위야 2세 | 4 마르완 1세 | 5 아브드 알 말리크 | 6 왈리드 1세 | 7 술라이만 | 8 우마르 2세 | 9 야지드 2세 | 10 히샴 | 11 왈리드 2세 | 12 야지드 3세 | 13 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 | 14 마르완 2세 | ||
| 아바스(1) 750-868 |
1 아부 알 아바스 | 2 알 만수르 | 3 알 마흐디 | 4 알 하디 | 5 하룬 알 라시드 | 6 알 아민 | 7 알 마문 | 8 알 무타심 | 9 알 와시크 | 10 알 무타와킬 | 11 알 문타시르 | 12 알 무스타인 | 13 알 무타즈 | ||
| 툴룬 868-905 |
1 아흐마드 이븐 툴룬 | 2 쿠마라와이 | 3 자이시 | 4 하룬 | 5 샤이반 | ||
| 아바스(2) 905-935 |
17 알 무크타피 | 18 알 무크타디르 | 19 알 카히르 | 20 알 라디 | ||
| 이흐시드 935-969 |
1 무함마드 이븐 투그즈 알 이흐시드 | 2 아불 카심 우누주르 이븐 알 이흐시드 | 3 아불 하산 알리 이븐 알 이흐시드 | 4 아불 미스크 카푸르 | 5 아불 파와리스 아흐마드 이븐 알리 알 이흐시드 | ||
| 파티마 969-1171 |
4 알 무이즈 | 5 알 아지즈 | 6 알 하킴 | 7 앗 자히르 | 8 알 무스탄시르 | 9 알 무스탈리 | 10 알 아미르 | 11 알 하피즈 | 12 앗 자피르 | 13 알 파이즈 | 14 알 아디드 | ||
|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 | ||||
|---|---|---|---|---|
| 무아위야 1세 | → | 야지드 1세 | → | 무아위야 2세 |
| 재위기간 | |||||||||
|---|---|---|---|---|---|---|---|---|---|
| 680년 4월 ~ 683년 11월 11일 (3년) | |||||||||
| 이 문서는 모든 걸 말아먹은 원흉에 대해 다룹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그동안 잘나갔던 것들이 한순간에 오염되었거나 폭망했습니다. |
우마이야 왕조의 제2대 칼리파.
무아위야 1세의 아들로 최초의 세습 칼리파이다.
그리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아들 후세인 이븐 알리를 낚아 카르발라에서 쳐죽이는 카르발라 참극을 일으켜 시아파를 분열시킨 원흉이기도 하다.
640년대 정통 칼리파 시대의 이슬람 제국이 점령했던 시리아에서 총독 무아위야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656년부터 661년까지 4대 칼리파 알리와 무아위야 사이에서 1차 피트나(내전)가 벌어지고 무아위야가 승리하자 어느새 그는 '칼리파의 아들'이 되어있었다.
674년부터 678년까지 콘스탄티노스 4세의 로마 제국과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이끌었으나 패배했다.
무아위야는 아들 야지드에게 칼리파직을 세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무아위야는 먼저 675년 혹은 676년 지방 대표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당신이 야지드를 칼리파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 Top 10'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위협했다.
끝내 그 대회에서는 야지드의 세습이 결정되었고, 4대 칼리파 알리의 아들인 후세인 이븐 알리는 크게 반발했다. 무아위야는 그를 달래기 위해 야지드에게 후세인을 대접하고 회유할 것을 요구했다.
680년 무아위야가 죽고 끝내 야지드가 즉위했다. 그러나 야지드는 무아위야의 부탁을 쌩까고 말았다.
후세인 이븐 알리는 쿠파 주민들의 부탁으로 메카를 떠나 쿠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르발라라는 지역에서 갑자기 우마이야군이 쳐들어와 후세인과 그 일행들을 몰살했다.(카르발라 참극)
이로서 알리를 추종하는 시아파와 시아파가 아닌 자들 간의 갈등의 골은 돌이킬 수 없이 커져버렸다.
(카르발라 참극을 기리는 행사는 이후 시아파에서 아슈라라는 채찍질 자해 이벤트로 거듭났으나, 최근에는 너무 잔인하다고 하여 헌혈로 대체된 상태다. 이는 지금의 수구꼴통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그나마 유일하게 잘한 일이지만,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싫어하는 시아파들은 아직도 채찍질 자해를 고수한다고 한다.)
사실 꼭 알리 추종자들(시아파)이 아니더라도 후세인을 그렇게 허무하게 죽여버린 행위는 무슬림 대부분의 공분을 샀다.
개빡친 '이븐 주바이르'라는 자가 반란 세력을 결집하고 683년에 메카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2차 피트나가 시작되었다.
야지드 1세는 이를 진압하러 먼저 이븐 주바이르를 지지한 메디나에서 대학살을 벌이고 메카로 갔으나(제1차 메카 공방전) 성과를 내지 못하고 683년 11월 11일 사망했다.
이후 아들 무아위야 2세가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