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마문

K-위키


보편 칼리파 목록
이집트 군주 · 오스만 파디샤
정통 칼리파
632-661
1 아부 바크르 | 2 우마르 | 3 우스만 | 4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 5 하산 이븐 알리
우마이야
661-750
1 무아위야 1세 | 2 야지드 1세 | 3 무아위야 2세 | 4 마르완 1세 | 5 아브드 알 말리크 | 6 왈리드 1세 | 7 술라이만 | 8 우마르 2세 | 9 야지드 2세 | 10 히샴 | 11 왈리드 2세 | 12 야지드 3세 | 13 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 | 14 마르완 2세
아바스
750-1258
1 아부 알 아바스 | 2 알 만수르 | 3 알 마흐디 | 4 알 하디 | 5 하룬 알 라시드 | 6 알 아민 | 7 알 마문 | 8 알 무타심 | 9 알 와시크 | 10 알 무타와킬 | 11 알 문타시르 | 12 알 무스타인 | 13 알 무타즈 | 14 알 무흐타디 | 15 알 무타미드 | 16 알 무타디드 | 17 알 무크타피 | 18 알 무크타디르 | 19 알 카히르 | 20 알 라디 | 21 알 무타키 | 22 알 무스탁피 | 23 알 무티 | 24 알 타이 | 25 알 카디르 | 26 알 카임 | 27 알 무크타디 | 28 알 무스타지르 | 29 알 무스타르시드 | 30 알 라시드 | 31 알 묵타피 | 32 알 무스탄지드 | 33 알 무스타디 | 34 앗 나시르 | 35 알 자히르 | 36 알 무스탄시르 1세 | 37 알 무스타심
카이로 아바스
1258-1517
38 알 무스탄시르 2세 | 39 알 하킴 1세 | 40 알 무스탁피 1세 | 41 알 와시크 1세 | 42 알 하킴 2세 | 43 알 무타디드 1세 | 44 알 무타와킬 1세 | 45 알 무스타심 | 46 알 와시크 2세 | 47 알 무스타인 | 48 알 무타디드 2세 | 49 알 무스탁피 2세 | 50 알 카임 | 51 알 무스탄지드 | 52 알 무타와킬 2세 | 53 알 무스탐식 | 54 알 무타와킬 3세
오스만
1517-1924
1 셀림 1세 | 2 쉴레이만 1세 | 3 셀림 2세 | 4 무라트 3세 | 5 메흐메트 3세 | 6 아흐메트 1세 | 7 무스타파 1세 | 8 오스만 2세 | 9 무라트 4세 | 10 이브라힘 | 11 메흐메트 4세 | 12 쉴레이만 2세 | 13 아흐메트 2세 | 14 무스타파 2세 | 15 아흐메트 3세 | 16 마흐무트 1세 | 17 오스만 3세 | 18 무스타파 3세 | 19 압뒬하미트 1세 | 20 셀림 3세 | 21 무스타파 4세 | 22 마흐무트 2세 | 23 압뒬메지트 1세 | 24 압뒬아지즈 | 25 무라트 5세 | 26 압뒬하미트 2세 | 27 메흐메트 5세 | 28 메흐메트 6세 | 29 압뒬메지트 2세
로마 이슬람 제국 치하 이집트 군주 목록 아이유브
칼리파 목록
정통 칼리파
641-658
2 우마르 | 3 우스만 | 4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우마이야
658-750
자립 아므르 이븐 알 아스 | 1 무아위야 1세 | 2 야지드 1세 | 3 무아위야 2세 | 4 마르완 1세 | 5 아브드 알 말리크 | 6 왈리드 1세 | 7 술라이만 | 8 우마르 2세 | 9 야지드 2세 | 10 히샴 | 11 왈리드 2세 | 12 야지드 3세 | 13 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 | 14 마르완 2세
아바스(1)
750-868
1 아부 알 아바스 | 2 알 만수르 | 3 알 마흐디 | 4 알 하디 | 5 하룬 알 라시드 | 6 알 아민 | 7 알 마문 | 8 알 무타심 | 9 알 와시크 | 10 알 무타와킬 | 11 알 문타시르 | 12 알 무스타인 | 13 알 무타즈
툴룬
868-905
1 아흐마드 이븐 툴룬 | 2 쿠마라와이 | 3 자이시 | 4 하룬 | 5 샤이반
아바스(2)
905-935
17 알 무크타피 | 18 알 무크타디르 | 19 알 카히르 | 20 알 라디
이흐시드
935-969
1 무함마드 이븐 투그즈 알 이흐시드 | 2 아불 카심 우누주르 이븐 알 이흐시드 | 3 아불 하산 알리 이븐 알 이흐시드 | 4 아불 미스크 카푸르 | 5 아불 파와리스 아흐마드 이븐 알리 알 이흐시드
파티마
969-1171
4 알 무이즈 | 5 알 아지즈 | 6 알 하킴 | 7 앗 자히르 | 8 알 무스탄시르 | 9 알 무스탈리 | 10 알 아미르 | 11 알 하피즈 | 12 앗 자피르 | 13 알 파이즈 | 14 알 아디드
아바스 왕조 칼리파
알 아민 알 마문 알 무타심
재위기간
813년 9월 27일 ~ 833년 8월 7일 (20년)

아바스 왕조의 제7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의 아들이자 알 아민의 형으로, 호라산 세력의 지도자였으며 알 아민의 이라크 세력을 몰아내고 알 아민을 쳐죽인 뒤 칼리파가 되었다.

즉위 전

[편집 | 원본 편집]

786년 9월 14일 아버지인 하룬 알 라시드의 즉위일에 태어났다. 그는 첩의 아들이라 정통성이 딸렸다.

787년에는 하룬과 그 조카가 섹스 후 알 아민을 새끼로 까서 동생이 생겼다. 근친섹스로 생긴 애새끼인만큼 정통성은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아민과 마문은 사이가 드러웠다. 하룬은 이 둘을 공평하게 기르려 노력했던 것 같다.

799년 하룬은 알 아민을 후계자로 지정하고 알 마문을 그 다음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알 아민 즉위 시 호라산은 마문이 다스릴 수 있게 했다.

알 아민과의 싸움(809-813)

[편집 | 원본 편집]

809년 3월 24일 마침내 하룬이 사망하고 알 아민이 칼리파가 되었다.

근데 알 파딜이란 놈이 알 마문의 유산을 떼어먹어서 알 아민의 반란 진압용 급여로 뿌려버렸다. 알 마문은 극대노했고 알 파딜은 좆될 위기를 느껴 그를 후계자 자리에서 내쫓기 위해 그를 음해했다.

결국 알 마문의 후계자 자리가 박탈당하자 빡친 알 마문은 호라산 세력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4차 피트나의 시작) 812년에는 마침내 바그다드까지 도달했고 813년 성이 함락되며 알 아민을 붙잡았다.

처음에는 칼리파 상징물들을 넘기는 조건으로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으나 알 아민이 그것들을 들고 튀려다가 걸리자 쳐죽여버렸다.

즉위 후, 4차 피트나(813-)

[편집 | 원본 편집]

허나 알 아민을 쳐냈다고 해서 제국 전체의 내전이 수습 완료된 건 아니었다. 아라비아반도, 이라크, 이집트 등에서 여전히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바그다드에서 바로 통치할 수 없었고 호라산의 거점 메르브에서 통치해야 했다.

815년 후세인 이븐 알리의 후손 무함마드라는 자가 자이드파 반란의 영향과 알 마문 사망설을 믿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메카에서 쫓겨났다.

816년 사울이란 자가 공신이었던 하르타마를 모함해 하르타마를 처형했다.

같은 해부터 817년까지 이란에서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같은 해 시아파의 반란을 막기 위해 8대 시아파 이맘인 알리 알 릿다를 다음 칼리파 후계자로 지목하는 초강수를 두고 817년에 알리 알 릿다도 이를 수용했다. 이로 인해 내부 반발이 커졌다.

818년에 알리 알 릿다가 의문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알 마문은 크게 슬퍼하며 장례까지 직접 치렀는데, 시아파에서는 이걸 슬퍼하는 척이라고 보고 나머지 수니파는 진심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819년 반란으로 통치력이 닿지 않게 된 이란 지역에서 자립한 사만 왕조가 세워졌다. 일단은 아바스 왕조에게 복속하기로 했으나 훗날 그들과 분리되고 만다.

820년 동로마 제국에서 슬라브인 토마스가 반란을 일으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동로마 제국을 침입했다.

821년 이집트 반란 진압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압둘라 이븐 타히르에게 아미르 직책을 주고 공물을 바치는 대신 독자 세력을 꾸리도록 허락하며 이란에 타히르 왕조가 들어섰다.

827년에 가서야 이집트 지역의 반란이 완전히 제압되고 알렉산드리아를 장악한 스페인인들을 몰아냈다.

같은 해부터 829년까지 예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830년 테오필로스가 다스리는 동로마 제국에 쳐들어가 로마에 끌려간 백성들을 데려왔다.

831년 로마가 타르수스를 공격해 무슬림들을 죽였다.

같은 해에는 인도로 건너가는 길목인 신드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833년 알 마문이 직접 로마의 카파도키아를 공격해 크게 이겼고 돈과 포로들을 받아냈다.

이렇게만 보면 그의 삶이 반란으로만 점철된 것 같지만, 지혜의 집을 후원해 고전 번역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대수학의 아버지인 알 콰리즈미도 이때 활동했다.

그리고 이집트에 있는 기자의 대피라미드에 있는 입구를 뚫은 인간이기도 한데, 원래는 도굴 목적으로 팠으나 나중에는 아예 입구처럼 용도가 변경되어 오늘날 피라미드 관광 때도 알 마문이 뚫은 입구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미흐나'라는 사상검증 테스트를 도입해 신학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쳐죽일 수도 있게 만들었고, 이런 검열에 많은 신학자들이 분노했다고 한다.

833년 8월 9일 물을 잘못 마셔 사망했고 이복동생 알 무타심이 칼리파 자리를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