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필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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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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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일 2세 | → | 테오필로스 | → | 미하일 3세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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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9년 10월 2일 ~ 842년 1월 20일 (13년) | |||||||||
로마 제국의 제87대 황제.
이름을 뜻풀이하면 테오(θεο)+필로스(φιλος)인데, 테오는 신, 즉 데우스와 비슷한 단어이고 필로스는 사랑이란 뜻으로 필로소피, 페도필리아 같은 단어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즉 갓 러버인 셈이다.
812년생으로 원래는 황족이 아니었으나 8살 때인 820년에 가서야 아버지 미하일 2세가 즉위하여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농부 출신이라 무식했으나 그게 콤플렉스였는지는 몰라도 아들에게는 엄청난 교사진을 붙여 가르친 덕에 교양이 풍부했다고 한다.
829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뒤이어 황제가 되었다. 레온 5세를 쳐죽여 자기 아버지의 즉위를 도운 암살범들이 처벌받거나, 평범한 시민의 말을 빼앗은 교구장을 벌하는 등 정의구현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830년부터는 알 마문이 칼리파로 있는 아바스 왕조와의 전쟁이 개시되었다. 초반에는 로마군이 밀렸으나 아바스 왕조에서 알 마문이 833년에 죽고 동생인 알 무타심이 즉위, 반란이 잇따라 터지면서 로마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특히 837년에는 큰 승리를 거뒀다.
그러다가 838년 복수전을 벌인 알 무타심이 알 아프신을 보내 다지몬(디지몬이 아니다) 전투에서 로마군을 개박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조카이자 알 마문의 아들 알 아바스가 반란 각을 봤다는 걸 알고 빡쳐서 대규모 숙청을 벌였고 모함으로 인해 다지몬 전투에서 이긴 알 아프신까지 목이 날아갔다.
아바스와의 전쟁은 842년 테오필로스와 알 무타심이 둘 다 뒈지며 끝났다.
한편 시칠리아에서도 여전히 아글라브 왕조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836년 불가리아에게도 통수를 깠고, 좆될 뻔 했으나 839년에 세르비아인의 지도자 블라스티미르가 불가리아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양면전선을 맞이한 불가리아가 더 불리해졌다.
또한 이맘때인 830년대부터 동유럽 우크라이나 평원 일대로 루스 카간국이라는 바이킹 지배층과 동슬라브 피지배층을 가진 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838년 이들로부터 사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들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견제를 위해 루스 근처에 있는 튀르크계 유목 국가인 하자르와 동맹했다. (하자르는 서돌궐에서 갈라져나온 국가로서 백제 정벌에도 참여했던 소정방이 서돌궐을 멸망시키자 서쪽으로 이동한 게 하자르이다.)
테오필로스는 예술 군주로서, 본인은 성상 파괴주의자이기는 했지만 많은 건축물들을 만들어 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비잔틴 르네상스라는 풍조가 일어났는데,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500년이나 전부터 종교에만 집착하지 말고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좋은 철학 요소들도 받아들이자는 운동이 생겼다.
843년 1월 20일 테오필로스가 사망하며 2살짜리 미하일 3세가 황제가 되고 황후 테오도라가 섭정을 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