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2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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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온 5세 | → | 미하일 2세 | → | 테오필로스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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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0년 12월 25일 ~ 829년 10월 2일 (9년) | |||||||||
로마 제국의 제86대 황제.
아모리아 왕조를 세운 사람이다.
770년생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의 아모리온 출신이라고 해서 그의 왕조에 아모리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군인이자 농부로 시작했으나 바르다니스 투르코스라는 자 밑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았다. 이때 함께했던 군인 중 한 명이 810년대에 로마 황제를 하는 레온 5세이다. 이후 803년에 투르코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동참했으나 그가 패배하자 레온과 함께 로마군에 항복했다.
813년 친구인 레온이 불가리아와 함께 주작질을 해 미하일 1세 랑가베스로부터 제위를 넘겨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온과 미하일의 사이는 좋았으나, 820년 미하일이 내란을 꾸미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레온이 미하일을 감옥에 쳐넣어버렸다.
근데 레온은 한 가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바로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미하일을 처형하지 않은 것. 결국 미하일과 한 패였던 간수와 함께 크리스마스 예배 때 갑자기 암살자들이 갑툭튀하게 만들어 레온을 죽여버리고 미하일은 감옥에서 풀려나 족쇄를 찬 채로 황제가 되었다.
사실 바르다니스 투르코스의 반란 때 함께한 사람으로 '토마스'라는 놈이 한 명 더 있었는데, 패배 이후 감빵에 갔다가 레온 5세에 의해 등용된 바가 있다. 근데 레온 5세가 쿠데타 쳐맞고 죽어버리자 복수를 하겠다고 스스로 콘스탄티노스 6세를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사람들도 구라치는 건 줄은 알았지만 속아주는 척 하며 동참했다. 821년 토마스는 아바스 왕조의 알 마문에게 동맹을 요청했으나 쌩까자 빡쳐서 아르메니아 지역을 공격했고 이슬람군이 패배하자 그제서야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고 아바스의 지원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갔다.
근데 미하일이 이끄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국군은 우주방어가 가능했다는 것이 토마스 반란군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822년부터 우주방어를 못 뚫던 토마스군은 사기가 떨어졌고 823년에는 불가리아 버스터콜까지 때리면서 토마스군은 좆망 위기에 몰렸다.
마침내 824년이 되어서야 토마스 측 군인들이 통수치고 토마스를 제국에 갖다바치면서 토마스의 반란이 끝났다.
같은 해 후우마이야 왕조 이베리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대규모 아랍 집단이 크레타를 쳐들어오고 점거했다. 이들은 816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기 전 지중해로 도망쳐나온 집단이었는데, 아바스의 영토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때리맥이고 난리를 치고 다녔다.
827년에는 시칠리아의 제독 에우페미오스라는 자가 숙청당하자 빡쳐서 당시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아글라브 왕조(훗날 파티마 왕조에게 죽창쳐맞고 뒈진다)에게 헬프를 치고 이슬람군을 시칠리아에 끌어들이고 말았다.
그 외에 미하일은 성상 파괴론자였으나 성상 공경파를 딱히 처벌하거나 하지는 않고 공존을 추구했다.
829년 10월 2일 사망했고 아들 테오필로스가 뒤를 이었다. 참고로 미하일은 앞서 말했던 바르다니스 투르코스의 휘하에 있으면서 그의 딸 테클라와 결혼했는데 테클라가 낳은 아들이 바로 테오필로스였다. 따라서 아모리아 왕조의 황제들은 미하일 본인을 제외하면 모두 바르다니스 투르코스의 후손이고, 반란은 패배했어도 황제 자손들을 남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