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클리오스 왕조
| 로마 제국의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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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 → | 이라클리오스 왕조 | → | 20년간의 혼란 |
| 존속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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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년 ~ 695년 705년 ~ 711년 (91년) | |||||||||
로마 제국의 열 번째 왕조.
7세기에 활동한 왕조로서, 로마 중심의 지중해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주적이 사산 왕조에서 이슬람 제국으로 바뀌는 등 고대가 끝나고 중세 로마, 이른바 비잔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때부터 제국의 공식 언어를 명목상으로만 쓰이고 거의 안 쓰이던 라틴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그리스어로 바뀜에 따라 황제 이름을 비롯한 각종 용어가 그리스어식으로 표기된다. 이라클리오스는 라틴어식으로 쓰면 헤라클리우스가 된다.
이라클리오스-콘스탄티노스 3세-콘스탄스 2세-콘스탄티노스 4세-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모두 부자 상속으로, 5세대가 하나로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동양에서는 수나라가 당나라로 바뀌고 중간에 측천무후가 무주를 선포하는 개난리가 있었으며,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 및 당에 의해 멸망했다. 일본은 아스카 시대였으나 이라클리오스 왕조가 끝날 때쯤 나라 시대에 진입해 백제와 당나라의 스타일을 베꼈다.
더 서쪽에는 프랑크 왕국이 있었다.
이라클리오스가 폭군 포카스를 610년에 쫓아내면서 시작되었다. 포카스는 603년부터 사산 왕조와 싸우다가 국력을 탕진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라클리오스가 구원투수를 해야 했던 것이다.
610년대에는 사산 왕조가 나약해진 로마 제국을 쳐들어와 아르메니아, 시리아, 예루살렘, 이집트까지 빼앗으며 제국은 엄청난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622년부터 반격을 개시해 역으로 사산 왕조를 멸망 위기까지 몰았고, 628년 사산 왕조의 샤한샤 호스로 2세가 쿠데타로 살해당하면서 사산 왕조와의 싸움은 끝났다.
문제는 632년부터 이슬람 제국의 정통 칼리파 시대가 시작되며 터졌다.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대패, 638년 예루살렘을 뺏기고 641년 이집트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이라클리오스가 많은 땅을 뺏긴 상태에서 죽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 자식들은 가족 싸움이나 하고 있었다. 641년 한 해 동안 여러 명의 황제가 나왔다.
먼저 두 아들 콘스탄티노스 3세와 이라클로나스가 공동 황제로 즉위했으나 콘스탄티노스 3세가 먼저 죽고 또 다른 아들 다비드 티베리오스, 콘스탄티노스 3세의 아들인 콘스탄스 2세가 공동 황제로 뒤이어 즉위했다.
이라클리오스의 손자였던 콘스탄스 2세는 이 혼란을 싹 다 제압하고 단독 황제가 되었다. 640년대 동안 보다 많은 영토를 이슬람 제국에게 빼앗겼으며, 656년 이슬람 제국에서 1차 피트나가 일어나며 잠시 안정되었다.
그 외에도 교황과 갈등을 빚다가 668년 암살당했고,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4세가 즉위했다.
그는 674년 이슬람 제국의 침입을 그리스의 불로 막아냈으며 679년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공물을 받는 조건으로 전쟁을 멈췄다.
대신 681년 불가르족이 불가리아 제1제국을 수립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685년 콘스탄티노스 4세가 죽자 그 아들인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즉위했다. 그는 무리한 전쟁과 교황과의 갈등을 일으켰고 명장 레온티오스를 숙청했다가 레온티오스의 반란으로 쫓겨나버렸다.
이후 20년간의 혼란이 일어나 첫 10년 간은 이라클리오스 가문이 아닌 이들이 제국을 다스렸다.
그러다가 698년 레온티오스를 쫓아낸 티베리오스 3세가 705년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또 쫓겨나고 레온티오스와 티베리오스 둘 다 처형당하면서 이라클리오스 왕조가 복귀했다.
그러나 또 불가리아와 크림 반도, 라벤나 등에서 시비를 걸다가 필리피코스의 반란으로 인해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처형당하고 이라클리오스 일족도 몰살당하며 진짜로 왕조가 쫑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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