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3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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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필로스 | → | 미하일 3세 | → | 바실리오스 1세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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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2년 1월 20일 ~ 867년 9월 24일 (25년) | |||||||||
로마 제국의 제88대 황제.
아모리아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 그를 몰아내고 마케도니아 왕조를 세운 바실리오스 1세의 아들 레온 6세가 사실은 미하일 3세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당대에도 유명한 음모론이었고 심지어 역사학자들조차 가능성 있다고 말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모리아의 혈통은 무려 11세기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840년 1월생으로 황제 테오필로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842년 두 살이 되자마자 아버지 테오필로스가 사망하고 황제가 되었다. 섭정은 어머니 테오도라가 맡았다.
아버지는 성상 파괴론자였으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843년 열린 공의회에서 성상 파괴론을 단죄하고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 성상 파괴론자인 총대주교를 짤라버렸다.
855년까지 섭정하면서 테옥티스도스라는 자와 같이 나라를 통치했는데, 이들은 나름 나라를 잘 이끌었다. 크레타, 시칠리아에서는 여전히 이슬람 세력과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15살 먹은 미하일은 슬슬 어머니를 몰아내고 싶었다. 먼저 855년 테옥티스도스를 제거하고 856년에는 어머니 테오도라를 수도원으로 쫓아냈다. 이 과정에서 테오도라에게 버려진 그녀의 오빠 바르다스가 도왔다.
도움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황제가 놀고먹는 동안 실권은 외삼촌 바르다스가 장악하고 말았다. 황제는 노답이었지만 그나마 비선실세짓을 하는 바르다스라도 일을 잘해서 제국의 수명은 연장되었다. 루스, 불가리아, 아랍 등의 침략을 격퇴했다.
이맘때쯤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가 키릴 문자의 원형이 되는 글라골 문자를 만들어 슬라브족에게 전파했다.
그리고 이때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간의 사이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서방교회에 붙는 세력이 많아지자 미하일이 직접 불가리아를 침공해 864년 보리스 1세를 동방교회로 개종시켰다.
바르다스는 술만 퍼마시는 미하일을 싫어했고 미하일도 실권을 장악한 바르다스를 싫어해 미하일 쪽에서 먼저 바르다스를 선빵치기 위해 준비했다.
866년 크레타 원정을 준비 중이던 바르다스가 이 소식을 알자 황제에게 따졌지만, 황제는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이지 않다고 예수의 피로 서약까지 하면서 의심을 풀었다.
물론 의심을 풀자마자 바로 통수를 치고 바실리오스 1세라는 새 인물을 데려와 바르다스를 처단했다.
바실리오스는 포로 출신으로 빡대가리였지만 힘이 존나 쎘다고 한다. 이런 점을 마음에 들어한 미하일에 의해 등용되어 바르다스를 몰아내는 것에 공헌하고 부황제로 임명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부황제 임명 이후에도 미하일이 술 파티를 벌이며 나랏일을 내팽개치고 지랄을 해대자 슬슬 쿠데타 각이라고 보고, 867년 9월 24일 암살자들을 보내 미하일을 쳐죽였다.
이후 황제 자리가 바실리오스 1세에게 넘어가면서 아모리아 왕조는 종료, 무려 2세기나 존속하는 마케도니아 왕조가 시작되었다.
다만 황제가 죽기 1년 전인 866년에 레온 6세가 태어났는데, 호적상 바실리오스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미하일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