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클리오스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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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카스 | → | 이라클리오스 | → | 콘스탄티노스 3세 |
| 이라클로나스 | ||||
| 아이깁투스의 군주 | ||||
| 포카스 | → | 이라클리오스 (1차) |
→ | 호스로 2세 사산 왕조 |
| 카바드 2세 사산 왕조 |
→ | 이라클리오스 (2차) |
→ | 콘스탄티노스 3세 |
| 이라클로나스 | ||||
| 우마르 정통 칼리프 시대 |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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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년 10월 5일 ~ 641년 2월 11일 (31년) | |||||||||
로마 제국의 제66대 황제.
포카스를 몰아내고 이라클리오스 왕조를 창건한 인물로, 그가 통치하던 31년 동안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 및 이슬람 제국과의 전쟁으로 매우 다사다난했다.
한때는 페르시아에게 이집트를 빼앗길 정도로 수세에 몰렸으며 얼마 후에는 페르시아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갔으나 마지막에는 이슬람 제국에게 둘 다 털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특히 이때 빼앗긴 예루살렘과 이집트는 두 번 다시 수복하지 못했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도 난리였는데 이슬람 제국이 갑툭튀해 동로마와 사산 왕조를 둘 다 위기로 몰았으며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당나라로 교체, 고구려가 중국과 전쟁을 벌이던 시절이다.
또한 이때부터 제국의 공식 언어를 그리스어로 변경했다. 사실 원래부터 그리스어를 써 왔고 행정상으로만 라틴어를 썼던 것뿐이라 다이나믹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관례적으로 이라클리오스 시대 이후부터 황제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표기한다. 반면 포카스까지는 라틴어로 표기.
즉 그의 시대부터는 본격적인 중세라고 볼 수 있다.
575년 유스티누스 2세 시대에 대 헤라클리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대 헤라클리우스는 마우리키우스 시대인 586년에 페르시아와의 솔라콘 전투에서 큰 승리를 이끌었으며 아프리카 총독으로 부임했다.
602년 포카스가 마우리키우스 일가를 몰살하고 8년 간 폭정을 벌였다. 이에 608년 대 헤라클리우스와 이라클리오스는 반란을 일으켰고 610년 10월 5일 포카스를 붙잡았다.
이때 이라클리오스가 포카스에게 너가 제국을 이따위로 만든 놈이냐고 디스했고, 포카스는 너가 나보다 잘 다스릴 수 있겠냐고 맞디스하자 그 자리에서 쳐죽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라는 도시에서 무함마드라는 장사꾼이 이슬람이라는 핵폭탄을 만들어내고 만다.
이라클리오스의 치세 초중반(610년대와 620년대)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의 역사와 같다. 이전에도 두 나라는 여러 번 전쟁을 벌였지만 이번에는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진심으로 벌이는 UFC였다.
문제는 전임 포카스가 나라의 군사 시스템을 그야말로 씹창내놓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호스로 2세는 황제가 바뀌어도 전쟁을 그만두지 않았다.
611년에는 시리아 속주와 아나톨리아 속주를 페르시아에게 점령당했다.
613년에는 대교구 안티오크와 다마스쿠스가 페르시아군에게 넘어갔다.
614년에는 대교구이자 성지 예루살렘에 페르시아에 정복되어 성십자가가 페르시아에 넘어갔다.
617년 호스로 2세의 사산군은 보스포루스 해협 인근 칼케돈으로 진격했다.
619년 세 번째 대교구인 알렉산드리아가 함락되며 아이깁투스 속주마저 페르시아에 점령당했다. 이에 따라 기원전 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멸망 이후 648년 만에 이집트가 로마 이외의 민족에게 점령당하게 되었다. 621년까지 이집트 내 동로마 잔존 세력이 일소되었다.
이로서 로마 제국의 아시아 영토 대부분이 상실되었고 주요 곡창지대로서 제국의 경제를 지탱하던 이집트까지 사라지자 수백년 간 이어져온 빵 배급이 불가능해졌다.
622년에는 페르시아가 로도스 섬까지 점령했다. 같은 해 아라비아에서는 무함마드가 12년간 규합한 무슬림들을 이끌고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동했다.(헤지라)
더군다나 북쪽에서 아바르족과 슬라브족까지 지랄을 떨면서 일리리쿰군이 붕괴되었고 제국은 전례없는 대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라클리오스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영토를 뺏기더라도 군대를 안전하게 유지하자는 마인드로 여전히 동방 전선의 병력은 상당히 많았다.
622년부터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는데, 아야 소피아의 금까지 뜯어내면서 성금을 모으고 대규모 군대를 조직했다.
당시 페르시아군은 (훗날 찬탈 샤한샤가 되는) 샤흐르바라즈가 이끌고 있었는데, 그와 직접 맞붙어 크게 승리했다.
623년에는 북쪽 영토를 침입하던 아바르족과 강화를 맺었다.
624년 이라클리오스가 이끄는 군대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 본토로 진격해 아르메니아를 정복했다.
626년 호스로 2세가 아바르족을 회유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입하나(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해군으로는 로마를 이길 수 없었다. 또한 이라클리오스의 부대가 셋으로 나뉘어 하나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갔다. 다른 하나는 테오도로스의 부대로 사힌과 싸웠으며 나머지 하나는 이라클리오스가 이끌었다.
테오도로스는 사힌을 박살내고 627년 페르시아와 적대관계였던 서돌궐을 회유해 페르시아 침입을 유도했다.
627년 12월 과거 신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에서 페르시아군을 초박살냈다. 이로서 오히려 페르시아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628년 수세임에도 계속 전쟁을 이어나가려는 호스로 2세의 행보에 반발한 아들 카바드 2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샤한샤가 되었다. 로마와 페르시아 간 화친이 이루어져 이집트, 예루살렘, 시리아 등을 비롯한 페르시아가 빼앗아간 모든 영토가 다시 제국에 수복되었다.
여기까지가 끝이었다면 이라클리오스는 아마 로마 제국 사상 최고의 황제 중 하나로 불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살던 시대는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622년부터 메디나에서 세력을 키우던 무함마드의 종교 공동체 '움마'는 628년 해자 전투에서 승리한 상태였다.
두 나라의 첫 충돌은 629년에 일어났다. 무함마드 사절단이 동로마의 속국 가산 왕국의 군대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져 이슬람군은 가산 왕국에 군대를 보냈으나 아직 세력이 크지 않았던 만큼 동로마군에게 패배했다.
632년 무함마드가 죽으며 아부 바크르가 칼리파로 등극, 정통 칼리파 시대가 열렸다.
633년 이슬람 제국은 이미 위기에 몰린 사산 왕조와 싸워 크게 승리했다.
634년 피라즈 전투에서 동로마-사산 연합군이 이슬람군에게 패배했다. 같은 해 아부 바크르가 사망하고 우마르가 2대 칼리파가 되었다.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동로마군이 이슬람군에 의해 궤멸되면서 동로마는 중동 지역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637년에는 대교구 안티오키아가 이슬람 제국의 수중에 떨어졌다.
638년에는 대교구이자 성지 예루살렘이 이슬람 제국에 점령되었다.
639년에는 제국을 통합하기 위해 단의론이라는 것을 주장했으나 칼케돈파와 합성론파 모두에게 거부당하고 교황에게까지 디스당했다. 같은 해 이슬람 제국은 이집트로 쳐들어갔다.
640년 이집트의 상당 부분이 점령당했고 알렉산드리아가 포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