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브리아 왕조
| 로마 제국의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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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의 혼란 | → | 이사브리아 왕조 | → | 니키포로스 왕조 |
| 존속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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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7년 ~ 802년 (85년) | |||||||||
로마 제국의 열한 번째 왕조.
유스티니아누스 왕조가 제국의 6세기를, 이라클리오스 왕조가 제국의 7세기를 상징한다면 이사브리아 왕조는 제국의 8세기를 상징한다.
20년간의 혼란을 제압한 왕조의 창시자 레온 3세가 이사브리아(이사우리아) 출신이라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다만 실제 출생지는 '게르마니키아'라는 중동의 어느 지역이다.
동로마사에 좆도 관심이 없는 한국인들에게 그 인지도는 없는 수준이지만 성상 파괴론은 역사 시간에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성상 파괴를 벌인 왕조가 바로 이 이사브리아 왕조다.
레온 3세부터 콘스탄티노스 6세까지 쭉 4대가 부자상속되는 가운데 아르타바스도스라는 놈이 찬탈을 시도하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콘스탄티노스 6세의 엄마 이리니가 황위를 찬탈했다.
서쪽에는 프랑크 왕국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점차 로마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750년대 콘스탄티노스 5세 때는 피핀 3세가 라벤나 총독부를 먹은 랑고바르드 왕국을 한대 때리맥이고 교황령을 만들어 로마를 걍 가져가버린다.
이후에는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가 나오는데 이 인물의 행보는 이사브리아 왕조를 끝장내는 데에 큰 공헌을 하셨다. 800년 대관식을 치르고 신성 로마 제국이 세워지자 동로마의 이리니와 결혼하면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그 소문이 동로마에 퍼지자 이리니는 걍 쫓겨나버렸다.
동쪽, 먼저 중동에서는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주적이 아바스 왕조로 바뀌었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언제나 그랬듯 8세기에도 계속 지랄했다.
더 먼 동쪽에는 당나라와 통일신라, 발해, 그리고 나라 시대의 일본이 있었다.
717년 레온 3세와 아르타바스도스가 테오도시오스 3세를 몰아내며 20년간의 혼란이 끝나고 이사브리아 왕조가 개창되었다.
레온 3세의 대표적인 행보는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왕조)과 불가리아 제국을 존나게 줘팬 것과 성상 파괴주의가 있다. 726년 성상 파괴령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성상은 공격해야 한다' vs '성상은 공경해야 된다' 밸런스게임은 제국을 100년 가까이 괴롭혔다.
공격 vs 공경. 무엇을 택할 것인가? 결국 아모리아 왕조가 나오는 9세기 중반에 가서야 성상을 공경하자가 정론이 된다.
정책 기조는 그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5세 때도 유지되었다. 이슬람과 불가리아를 줘패고 성상을 공격하는 것.
근데 아버지의 쿠데타를 도왔던 아르타바스도스가 갑자기 통수를 치며 반란을 일으켰다. 2년 만인 743년에 개같이 진압.
이후 740년대 동안은 3차 피트나로 서로 싸워대던 우마이야를 쳐들어가 많은 인력을 제국으로 빼돌렸다.
750년대에는 우마이야가 망하고 색반전 국가인 아바스가 들어선다. 동시에 서쪽에서는 로마 교회가 있는 라벤나 총독부를 랑고바르드한테 뺏기고 걔네는 또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에게 뺏기는 일이 벌어진다.
760년대부터 775년까지는 불가리아를 쳐들어가 아주 미친듯이 복날 개새끼 잡듯 줘패고 말았다.
성상 파괴와 이슬람과의 전쟁은 아들인 레온 4세 때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레온 4세는 몸병신이라 성상 공경파인 아내 이리니가 은근슬쩍 성상 파괴주의에 겐세이를 놓기 시작했다.
레온이 죽고 잼민이인 콘스탄티노스 6세가 즉위했지만 얘도 여전히 성상을 공격하자를 선택했다. 물론 실권은 엄마 이리니에게 있어 787년 성상을 공경하자 파가 제2차 니케아 공의화에서 공격을 선택한 새끼들을 쳐죽이자고 결의한다.
790년에는 이리니가 아예 아들을 쳐내려고 했으나 실패한다. 이후 792년에 복귀해 힘을 쌓다가 797년 아들의 두 눈깔을 뽑아버리고 수도원에 쳐박아버린다.
로마 최초의 여자 황제이자 자기 아들의 눈깔을 뽑은 이리니는 이사브리아 왕조의 정책 기조인 성상을 공격하자와 정반대로 갔다. 오랜만에 성상을 공경하자 파가 힘을 얻었지만 그녀는 공격을 고른 놈들을 적극적으로 쳐죽이지는 않으며 공경을 고른 놈들에게 비토를 받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800년 갑툭튀한 노근본 서로마 황제 자리를 먹어버린 카롤루스 대제가 동로마 황제 자리까지 통합하겠다고 이리니와 결혼하겠다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빡친 시민들이 802년 이리니를 내쫓으며 이사브리아 왕조는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