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정치
| 로마 제국의 왕조 | ||||
|---|---|---|---|---|
| 군인 황제 시대 | → | 사두정치 | → | 콘스탄티누스 왕조 |
| 존속기간 | |||||||||
|---|---|---|---|---|---|---|---|---|---|
| 293년 ~ 311년(사두정치 자체) 311년 ~ 324년(후폭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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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네 번째 혼란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군인 황제 시대를 제압하고 이 개판이 난 이유를 넓은 영토로 인한 국방 실패로 간주하고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그것이 바로 제국을 4명이 나누어 통치한다는 아이디어였다.
293년 실시되어 처음 10년 동안은 나름 잘 돌아갔으나 305년~307년을 전후해 개판으로 치닫고 만다.
실제로는 한 나라에 황제가 기본 4명, 최대 6명까지 찍었던 어찌보면 군인 황제 시대보다도 더 개막장이었던 시대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285년 군인 황제 시대를 끝내고 로마의 개판을 수습했다. 이후 1년 동안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황제로, 막시미아누스를 서방을 다스리는 부황제로 두는 시스템을 택했다.
인원수 2명
286년에는 막시미아누스를 정제로 승격시키면서 동서 분할 통치가 시작되었다. 아마 이전 로마 황제 문서들을 정독했다면 알겠지만 공동 황제가 로마를 서방과 동방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일은 이미 여러 번 있었고 이 케이스도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원수 4명
- 동방 정제 디오클레티아누스(실질적 주도권)
- 로마의 아시아 부분과 이집트를 통치한다. 이에 따라 이집트인들로부터 파라오 칭호도 받았다.
- 동방 부제 갈레리우스
- 그리스를 비롯한 발칸 반도 지역을 통치한다.
- 서방 정제 막시미아누스
- 이탈리아와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를 통치한다.
- 서방 부제 콘스탄티우스 1세
-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즉 지금의 프랑스와 영국을 통치한다.
293년 그는 로마를 4개로 나누어 통치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니 그것이 바로 사두정치이다.
제국이 너무 넓어 계속되는 침입을 막으려면 한 명의 황제만 가지고는 무리였다. 이에 따라 아예 4명의 황제를 제국에 두기로 한 것이다.
물론 제1차 사두정치는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아이들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힘이 강했다.
303년부터 305년까지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주도로 기독교 박해가 벌어졌으며 갈레리우스가 적극 참여, 콘스탄티우스 1세는 거의 탄압하지 않았다.
305년 동서방의 정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동반 은퇴하며 부제였던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 1세가 정제가 되었다.
인원수 4명
-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 발칸 반도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 아시아와 이집트
- 서방 정제 콘스탄티우스 1세↑
-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 서방 부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사라진 놈들 - 동방 정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정제 막시미아누스
처음에는 좋았다. 그러나 306년 콘스탄티우스 1세가 칼레도니아(지금의 스코틀랜드) 원정을 떠난 사이 병으로 사망하면서 문제가 꼬이고 만다.
인원수 6명
-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 발칸 반도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 아시아와 이집트
- 서방 정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 서방 부제 콘스탄티누스 1세
-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 서방 갑툭튀 막센티우스&막시미아누스
뒤진 놈 - 서방 정제 콘스탄티우스 1세
원래 같으면 당시 서방 부제인 발레리우스 세베루스가 서방 정제가 되어야 하지만 군인들이 멋대로 콘스탄티누스를 서방 정제로 추대하고 만다.
물론 이는 흐지부지됐고 대신 서방 부제로 임명되었다.
콘스탄티누스가 서방 부제가 되었다는 것을 들은 막센티우스는 이에 반발하면서 306년 10월에 반란을 일으키고 아버지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황제가 되었다. 이로서 사두정치는 막장으로 흘러가고 만다.
인원수 5명
-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 그리스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 시리아와 이집트
- 서방 1 콘스탄티누스 1세
-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 서방 2 막센티우스&막시미아누스
- 이탈리아
뒤진 놈 - 서방 정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서방 정제인 발레리우스 세베루스가 막센티우스와 막시미아누스를 진압하려 했으나 그는 307년 막시미아누스에게 속아 패배하고 처형당한다.
이때부터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들어오지 않으며 6명 중 1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된다.
인원수 6명
-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 그리스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 시리아와 이집트
- 서방 정제 리키니우스
-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 서방 부제 콘스탄티누스 1세
-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 서방 2 막센티우스&막시미아누스
- 이탈리아
개막장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308년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가 제국의 황제들을 불러모았으나 리키니우스를 서방 정제로 임명하며 더 막장이 되고 말았다. 특히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크게 반발했다.
인원수 5명
-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 그리스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 시리아와 이집트
- 서방 정제 리키니우스
-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 서방 부제 콘스탄티누스 1세
-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 서방 2 막센티우스
- 이탈리아
뒤진 놈 - 서방 2 막시미아누스
이후 막시미아누스가 아들 막센티우스와 사이가 틀어져 콘스탄티누스에게 붙지만, 310년 콘스탄티누스를 통수쳤다가 진압당하고 뒈진다.
인원수 4명
- 동방 1 리키니우스
- 발칸 반도
- 동방 2 막시미누스 다이아
- 아시아와 이집트
- 서방 1 콘스탄티누스 1세
-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 서방 2 막센티우스
-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뒤진 놈 -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311년 동방 정제였던 갈레리우스가 사망하고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정제가 되며 로마는 4파전이 되었다.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다.
-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사이가 나쁘다
- 리키니우스와 다이아의 사이가 나쁘다
-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손을 잡아 막센티우스와 다이아를 때려잡자!
먼저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를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쳐바르고 강에 밀어버렸다. 이로서 콘스탄티누스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먹고 서로마 전체를 차지했다.
313년 2월 3일에는 리키니우스와 함께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 종교로 인정했다.
313년 4월 30일에는 리키니우스가 막시미누스 다이아를 쳐바르며 동로마 전체를 통합했고, 어느새 로마는 서방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리키니우스만 남게 되었다.
이후 1년 동안은 그럭저럭 분할 통치가 이루어졌으나, 콘스탄티누스 암살 시도가 리키니우스의 부하에 의해 발생했다는 게 밝혀지며 둘 사이는 틀어졌다.
인원수 2명
결국 314년 10월 8일 둘 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1차 전쟁은 317년 3월 1일에 끝났고, 콘스탄티누스가 크게 승리해 리키니우스 세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리키니우스의 공동 황제였던 발레리우스 발렌스의 목도 썰어버렸다.
7년 동안 휴전이 이루어졌다.
320년 리키니우스가 콘스탄티누스를 빠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복하는 일이 벌어지자 승기는 점차 콘스탄티누스에게 기울고 있었다.
324년 마침내 둘 간의 최종결전이 벌어졌다.
7월 3일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9월 18일 리키니우스의 본거지인 비잔티움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리키니우스는 항복하고 콘스탄티누스가 단일 황제가 되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왕조가 개창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