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3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
| 테오도시오스 3세 | → | 레온 3세 | → | 콘스탄티노스 5세 |
| 재위기간 | |||||||||
|---|---|---|---|---|---|---|---|---|---|
| 717년 3월 25일 ~ 741년 6월 18일 (24년) | |||||||||
| 이 문서는 성군(聖君)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세금 헌터 머똥령들이 본받아야 할 개념 군주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 똥수저 백성들의 편이니 모두 폐하에게 경배합시다. |
로마 제국의 제76대 황제.
이사브리아 왕조를 개창한 양반이다.
보통은 성상 파괴주의를 벌인 양반으로만 알려져 있고 교육과정에서도 성상 파괴주의를 메인으로 설명하면서 대표 인물 A 정도로 취급하는 게 다지만 실제로는 20년간의 혼란을 끝내고 중세 로마의 토대를 다져 제국의 장기 존속을 가능케 한 명군이었다. 다만 성상 파괴는 그의 그나마 손에 꼽을 만한 실책이었다.
한국의 세계사 교육과정에서는 라틴어식인 레오 3세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카롤루스 대제에게 대관식을 해준 교황 레오 3세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므로 주의. 레온 3세는 685년생으로 8세기 초에 활동했으며 교황 레오 3세는 동로마 레온 3세 사후 9년 뒤인 750년에 태어나 800년대 전후에 활동했다.
685년생, 시리아 출신으로 그에게서는 아랍(사라센)의 정신이 나타났다고 한다. 추후 이사우리아 지역에 정착했는데, 이는 그의 왕조 이름이 이사브리아가 된 이유다.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편에 붙어 그가 쫓겨났다가 다시 복위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출세했다. 아나스타시오스 2세 때는 아나톨리콘의 총독(스트라테고스)이 되었다.
훗날 쿠데타로 황제가 되는 아르타바스도스와 함께 71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테오도시오스 3세로부터 황위를 넘겨받고 20년간의 혼란을 종식, 이사브리아 왕조를 개창했다.
'에클로가'라는 그리스어 법전을 편찬해 똥꼬충을 사형시키고 낙태를 불법화하는 와중 나머지 사형으로 규정된 법들 상당수의 처벌을 신체절단형으로 약화시켰다.
717년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불가리아 제국과 함께 이슬람군을 막아내며 동쪽 전선을 안정시키고 중흥의 발판을 닦았다.
719년 쫓겨났던 아나스타시오스 2세가 불가리아군의 지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제국 정부가 불가리아 측에 '우덜이 이슬람이랑 싸우면서 사이 좋지 않았나~ 니 좋고 내 좋은거 아이가'를 시전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불가리아군이 바로 아나스타시오스 2세를 잡아 제국에 넘겨버렸다.
726년에는 그 유명한 성상 파괴령을 내렸다. 제국의 정체성을 성상 파괴주의로 잡음으로써 제국의 통합을 노리고 로마 교회를 견제하고, 눈에 보이는 성상 파괴라는 행동을 통해 이단을 보다 손쉽게 잡기 위함이었다.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이는 훗날 동서 로마 교회 분열의 단초가 되었다.
727년 니케아에서 이슬람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730년 제국 전역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했으나 교황이 실질적 권위를 갖는 이탈리아 북부는 거부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성상 파괴주의가 법적으로 규정되었다.
739년 니코폴리스에서 이슬람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740년 아크로이논 전투에서 이슬람군에게 크게 승리했다. 이로 인해 로마의 방어 태세가 끝나고 로마가 공세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우마이야 왕조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741년 6월 18일에 사망하며 장남 콘스탄티노스 5세가 황위를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