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왕조
| 로마 제국의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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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두정치 | → | 콘스탄티누스 왕조 | → |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
| 존속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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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년/305년 ~ 363년 (70년/58년) | |||||||||
로마 제국의 다섯 번째 왕조.
신(네오) 플라비우스 왕조라고도 부른다.
사두정치 때 우리가 아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버지 콘스탄티우스 1세가 시작한 왕조로,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 1세 대제가 사두정치의 혼란을 통일했다.
그러나 그 이후 또 16년 동안 분열을 맞이했고, 콘스탄티우스 2세가 다시 통일했다.
율리아누스를 끝으로 종료되었다.
콘스탄티누스 가문의 황제만 볼드체를 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우스 2세, 율리아누스를 중심적으로 보자.
제1차 사두정치 때인 293년 콘스탄티우스 1세가 브리타니아와 갈리아를 통치하는 서방 부제로 임명되며 첫 등장을 알렸다.
305년 제2차 사두정치가 시작되며 콘스탄티우스 1세가 서방 정제로 레벨업했다.
306년 콘스탄티우스 1세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1세 대제가 서방 부제로 임명되어 아버지의 영역을 물려받았다.
310년에는 콘스탄티누스의 적인 막센티우스의 아버지 막시미아누스가 아들과 사이가 틀어져 콘스탄티누스에게 붙었다가 배신을 때리고 콘스탄티누스에게 응징당했다.
311년 사두정치를 이끌던 갈레리우스가 죽고 사두정치가 흐지부지되어 4파전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리키니우스와 연합해 막센티우스 및 막시미누스 다이아와 싸웠다.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의 세력을 무너뜨리며 영역이 더 넓어지고 서로마의 지배자가 되었다.
313년 2월 3일에는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했다.
314년부터는 동로마의 리키니우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324년에 완전히 제압하여 콘스탄티누스는 서로마를 넘어 로마 제국 전체의 지배자가 되었다.
324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새 수도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325년에는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아타나시우스파가 정설로 인정받고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지정되었다.
330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이 완료되었다.
337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하며 제국은 세 개로 분할되었다.
34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아프리카를 얻기 위해 콘스탄스를 공격했다가 전사했다. 콘스탄스는 형의 서방 영토를 꺼억했다.
이후 10년간은 서로마의 콘스탄스와 동로마의 콘스탄티우스 구도로 흘러갔다. 콘스탄스는 아타나시우스파를, 콘스탄티우스는 아리우스파를 지지했다.
- 서방 마그넨티우스
- 로마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일리리아 베트라니오
- 동방 콘스탄티우스 2세
350년 콘스탄스가 콘스탄티누스 왕조가 아닌 마그넨티우스에게 살해당하며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영역은 동로마로 좁혀졌다.
로마에서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일원인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가 들고 일어났으나 한 달 만에 마그넨티우스에게 진압당했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 2세가 350년 베트라니오 세력을 흡수하고 351년 콘스탄티우스 갈루스를 부황제로 임명, 353년 마그넨티우스를 멸망시키면서 제국은 다시 통일되었다.
353년 콘스탄티우스 2세가 로마 제국을 다시금 통일했다.
354년 부황제인 갈루스를 엄청난 의심병으로 죽여버렸다.
359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터지자 율리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되어 콘스탄티우스 2세와 싸우러 갔다.
361년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콘스탄티우스 2세가 사망하며 유일한 왕위 계승권자였던 율리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그는 기독교 억제 정책과 다신교 부활 정책을 펼치다가 363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이후 요비아누스가 황제로 선출되어 기독교 억제 정책은 중단되고 콘스탄티누스 왕조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