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니아누스 3세
| 서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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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네스 | → | 발렌티니아누스 3세 | → |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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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5년 10월 23일 ~ 455년 3월 16일 (29년 144일) | |||||||||
서로마 제국의 제53대 황제.
호노리우스의 공동 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 3세의 아들로, 어머니는 테오도시우스 1세의 딸이자 호노리우스의 여동생인 갈라 플라디키아이다. 즉 호노리우스는 외삼촌이 되고 테오도시우스는 외할아버지이다.
419년 7월 2일생으로 콘스탄티우스 3세 사후인 421년부터 호노리우스가 갈라 플라디키아와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위협하자 동로마 제국으로 망명했다.
423년 호노리우스가 사망하고 요한네스라는 범부가 황제로 추대되자 동로마의 테오도시우스 2세가 그를 쫓아내고 425년 10월 23일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서로마 황제로 앉혔다.
문제는 요한네스가 뒈지기 직전 훈족 버스터콜을 때려버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훈족들을 데려온 아에티우스를 휘하에 넣어 내전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달족의 가이세리크가 북아프리카를 먹어버리며 상황이 나빠졌고, 황제와 어머니 갈라 플라디키아가 아에티우스를 몰아내기 위해 보니파키우스를 보냈다가 아에티우스에게 패배하자 서로마는 아에티우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황제의 여동생인 호노리아가 폐급짓을 하고 마는데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훈족의 그 유명한 아틸라에게 청혼을 해버리고 서로마의 절반을 줄 것을 약속한 것이다.
450년 갈라 플라디키아가 사망했으며 451년 아틸라는 갈리아로 쳐들어왔으나 간신히 이를 격파했다.
근데 452년 또 쳐들어왔고 이탈리아 북부를 초토화시켰다가 교황 레오 1세가 외교를 시도해 평화적으로 돌려보냈다. 이 때문에 아에티우스의 입지가 매우 불안정해졌다.
아에티우스는 나름 서로마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잘 싸워왔지만 이제 퇴물이 되었고 결국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454년 직접 아에티우스를 썰어버렸다.
그러나 455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가 아에티우스의 잔당을 이끌고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암살했다.
이로서 서로마의 테오도시우스 왕조는 종료, 455년부터 476년까지 21년의 시간 동안 서로마는 완전히 동네북이 되었고 황제는 교황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