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우스 2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
| 콘스탄티누스 1세 | → | 콘스탄티우스 2세 (동방) |
→ |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
→ | 율리아누스 | ||||
| 콘스탄스 (중앙) |
→ | 콘스탄스 (서방) |
→ | 마그넨티우스 (찬탈) | ||||||
| 콘스탄티누스 2세 (서방) |
베트라니오 (부흥) | |||||||||
| 재위기간 | |||||||||
|---|---|---|---|---|---|---|---|---|---|
| 337년 5월 22일 ~ 361년 11월 3일 (24년 196일) | |||||||||
로마 제국의 제45대 황제.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일원으로 아버지인 콘스탄티누스 1세 사후 제국의 동방을 통치했다. 형인 콘스탄티누스 2세는 서방을, 동생 콘스탄스는 중앙을 담당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사후 분할된 제국을 다시 통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337년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후 당해 여름에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왕족들이 대량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 아들들이 이를 주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340년 서방의 콘스탄티누스 2세가 중앙의 콘스탄스를 조지기 위해 쳐들어갔다가 일개 매복군에게 역관광당하고 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제국의 서방과 중앙은 전부 콘스탄스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동방의 콘스탄티우스 2세는 아리우스파였고 아타나시우스파를 탄압했으나, 세력이 더 강한 콘스탄스가 아타나시우스파를 밀어주고 콘스탄티우스 2세를 압박하자 이를 철회해야만 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350년 콘스탄스가 마그넨티우스라는 자에게 암살당하며 판국이 바뀌고 만다.
마그넨티우스는 순식간에 콘스탄스의 영역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3월에는 베트라니오라는 자가 나타나 마그넨티우스에게 맞서면서 3파전으로 양상이 변화했다.
물론 베트라니오의 경우에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콘스탄티우스 2세의 회유로 항복하고 합류했다.
이후 3년 간 마그넨티우스와 콘스탄티우스 2세는 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353년 마그넨티우스의 군대는 궤멸 직전에 놓여 마그넨티우스는 자살하고 만다.
이렇게 콘스탄티누스 1세 사후 16년 만에 제국은 다시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제국 전체를 손에 넣은 콘스탄티우스 2세는 너무 의심이 많고 황족들을 견제했다. 자기가 가둬놓은 사촌 콘스탄티우스 갈루스를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가 처형하고, 죄없는 사람들에게 혐의를 덮어씌우거나 자기가 숙청한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 노예들까지 썰어버렸다.
그러나 통치자로서는 나름 잘했는데 콘스탄티노플이 수도가 된 뒤에도 로마에만 주어지던 특권들을 콘스탄티노플에도 적용했으며, 특히 국방에 신경을 많이 써서 게르만족이나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또한 350년대에 기독교 공의회를 자주 개최해 극단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 간의 일치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파의 우두머리인 아타나시우스가 도저히 타협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그를 축출하고 아리우스파의 주장이 더 들어간 새로운 신경을 채택했다. (이는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콘스탄티우스 2세 사후 흐지부지되고 니케아 신경으로 되돌아갔다.)
355년에는 자기가 죽인 갈루스의 동생 율리아누스를 부제로 임명해 갈리아의 통치를 맡겼다.
그러던 359년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쳐들어오자 율리아누스에게 군대를 요청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황족을 지나치게 견제하는 콘스탄티우스 2세의 의심병이 도져 율리아누스의 힘을 빼놓으려는 것이었다.
이에 율리아누스는 휘하 군인들에게 황제로 추대되어 콘스탄티우스 2세를 몰아내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갔으나 동시에 계속해서 콘스탄티우스 2세와 대화로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361년 11월 3일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어버리고, 황족들이 대부분 썰려버려 유일한 계승자가 율리아누스뿐이었던 탓에 율리아누스가 후계자가 되어 제국을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