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누스
| 로마 제국의 황제 | ||||
|---|---|---|---|---|
| 콘스탄티우스 2세 | → | 율리아누스 | → | 요비아누스 |
| 재위기간 | |||||||||
|---|---|---|---|---|---|---|---|---|---|
| 361년 11월 3일 ~ 363년 6월 26일 (1년 266일) | |||||||||
로마 제국의 제46대 황제.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 콘스탄티누스 1세 대제의 조카이다.
기독교를 배반하고 로마 다신교를 밀어주어 배교자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사한 사상을 가진 율리우스 에볼라가 존경했다.
331년생으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이복동생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콘스탄티우스 갈루스다.
337년 아버지인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가 황족 대학살 사건에 휘말려 죽으면서 고아가 되었다. 이후 동방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감시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기독교 교육과 고전 문학 및 철학 교육을 둘 다 받았다. 그러나 342년부터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형처럼 감금 생활을 하게 된다.
350년 마그넨티우스가 서방 황제 콘스탄스를 척결하고 콘스탄티우스 2세와 싸우려고 하자 이듬해인 351년 풀려났다. 갈루스는 부황제로 지명되었다.
그런데 콘스탄티우스 2세의 의심병은 극히 심했고 353년 로마 통일 이후 354년에 갈루스를 죽여버렸다.
355년 콘스탄티우스 2세는 자기가 죽인 갈루스의 동생 율리아누스를 부제로 임명해 갈리아를 통치하게 했다. 이때 갈리아 관리를 나름 잘했다고 한다.
359년 콘스탄티우스 2세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전쟁하면서 율리아누스에게 무리한 군사적 요구를 했는데 누가 봐도 그의 힘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율리아누스 휘하의 군인들이 율리아누스를 정제로 추대하고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반란을 일으켜 몰아내러 갔다. 이 와중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우스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해 대화로 해결하려 했다.
결국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으나...
싸워보기도 전에 콘스탄티우스 2세가 병으로 사망하고 유일한 왕위계승권자였던 율리아누스가 후계자로 지목되어 황제가 되어버린다.
황실의 사치를 줄이고 세금 제도를 개편한 후 지출을 크게 줄여 재정 상태를 완화시켰다.
율리아누스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은 4세기 당시 대세였던 기독교를 거부하고 이교도의 편을 든 것이었다.
밀라노 칙령 이후 명목상으로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대등해졌다고는 하지만 황실의 종교가 기독교인 이상 기독교는 이미 다른 종교를 탄압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율리아누스는 다른 종교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고 교회에 세금을 매기고 기독교인을 공직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의 제단 등 종교 시설들을 복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개박살낸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려 시도한 것이 율리아누스였다.(이는 지진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율리아누스는 자신이 기독교를 배반했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냈으며 기독교를 비난하고 다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회개 한 번으로 용서받는 기독교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견유학파도 비판했다.
362년에는 그 유명한 델포이의 마지막 신탁이 내려왔다. 내용은 '다이달로스 궁전이 땅으로 추락하였다고 전하라'. 내용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이 시기에는 기독교가 그리스 및 로마의 전통 종교의 지위를 빼앗고 있었다.
그러다가 363년 6월 26일 사산 왕조 페르시아 원정에서 전사했고 이렇게 콘스탄티누스 왕조는 끝났다. 또한 이교도가 로마 전체를 이끄는 역사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