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노스 2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
| 콘스탄티노스 4세 | → | 유스티니아노스 2세 (1차) |
→ | 레온티오스 |
| 티베리오스 3세 | →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차) |
→ | 필리피코스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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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5년 7월 10일 ~ 695년 (1차, 10년) 705년 8월 21일 ~ 711년 11월 4일 (2차, 6년) | |||||||||
로마 제국의 제70대 황제.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4세 사후 즉위했으며, 중간에 쫓겨났다가 다시 복위했다가 또 쫓겨났다.
열정은 넘쳤으나 그 결과는 파멸적이었고, 결국 이라클리오스 왕조를 끝장내고 20년간의 혼란을 불러온 인간이다.
685년 이슬람 제국에서 아브드 알 말리크가 칼리파로 즉위했다.
686년 레온티오스를 파견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이슬람군을 격파했다.
688년 내부 분열을 수습하려던 아브드 알 말리크와 평화 협정을 맺어 잠시 전쟁을 그만두고 키프로스를 공동 통치 구역으로 결정했다.
688년부터 689년까지 불가리아 제국과 싸워 이기고 슬라브족들을 아나톨리아로 이주시킨 후 무거운 세금을 매겼다.
691년 퀴니섹스툼 공의회를 열어 성직자의 재혼을 금지했다.
692년부터 예수의 형상이 새겨진 금화 노미스마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이슬람 제국에서 바친 금화에 예수의 모습이 없는 걸 핑계로 재차 침공했다.
이때 명장 레온티오스를 재차 출전시켰으나 황제 본인이 무겁게 세금을 매겨 괴롭힌 슬라브족들이 아랍에 죄다 투항하면서 아르메니아를 오히려 뺏겼고, 그럼에도 레온티오스를 탓하며 깜방에 쳐넣었다.
같은 해 퀴니섹스툼 공의회에 불복한 교황 세르지오 1세를 체포하려 시도했으나 로마 시민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695년 헬라스 테마의 총독으로 임명된 레온티오스가 반란을 일으켜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몰아내고 코를 잘라 크림 반도 헤르손으로 유배 보냈다. 이로서 20년간의 혼란이 시작되었다.
레온티오스는 3년 동안 통치했으나 카르타고에서 패배하여 카르타고를 영구적으로 상실했다. 이에 698년 티베리오스 3세가 반란을 일으켜 레온티오스를 수도원으로 쫓아내버렸다.
티베리오스는 7년의 치세 동안 이슬람 제국과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했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헤르손에서 세력을 규합하다가 하자르족에게 망명하고 이후 불가리아로 튀었다.
705년 불가리아군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했다. 처음에 시민들은 그를 조롱했으나 하수도로 침입해 순식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자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이후 706년 레온티오스와 티베리오스는 끌려나와 시민들에게 똥폭탄을 쳐맞았다. 우디르급 태세전환 오지구요. 둘은 유스티니아노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처형당했다. 레온티오스와 티베리오스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철저히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708년에는 불가리아를 통수쳐 공격했으나 개쳐발렸다.
709년에는 라벤나에서 황제에게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대거 숙청했다.
711년에는 교황 콘스탄티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왔고 황제와 화해했다.
그러나 같은 해 크림 반도에서 반란이 일어나 필리피코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황제를 처형, 이라클리오스 일가를 학살하면서 이라클리오스 왕조는 완전히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