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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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제국의 황제 | ||||
|---|---|---|---|---|
|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
→ | 아르카디우스 | → | 테오도시우스 2세 |
| 재위기간 | |||||||||
|---|---|---|---|---|---|---|---|---|---|
| 395년 1월 17일 ~ 408년 5월 1일 (13년 10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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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제52대 황제.
테오도시우스 사후 제국 동부를 물려받았으며 이후 로마 제국의 동서는 다시는 합쳐지지 못했다.
그리고 멍청하고 어벙한 성격으로서 동생인 호노리우스와 비슷했지만, 최소한 호노리우스처럼 앞장서서 나라를 말아먹지는 않았다.
395년부터 396년까지는 루피누스라는 자가 섭정을 맡았으나, 옆동네의 스틸리코보다는 무능해서 서고트의 침입을 제대로 막지 못했고 396년 11월 17일 게르만족 출신 가이나스의 사주로 열병식 날 살해당했다.
이후 에우트로피우스가 섭정을 시작했는데 과거 서로마에서 반란을 일으킨 아르보가스트의 누이 아일리아 에우독시아를 아르카디우스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에우독시아도 야망을 드러냈는데 에우트로피우스와의 관계는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400년 가이나스가 에우트로피우스를 몰아내고 군사령관 자리를 얻었으나 제국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 동로마에서 게르만인의 영향력이 매우 약해지고 에우독시아의 실권이 커졌다.
이후 4년 간은 실권자인 황후 에우독시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대립이었다. 에우독시아는 방탕했으나 크리소스토무스는 금욕주의였기 때문에 4년 동안 계속 충돌하다가 404년에 크리소스토무스를 마침내 몰아냈다.
이 과정에서 서로마의 호노리우스는 크리소스토무스의 편을 들면서 아르카디우스와 에우독시아 황후와의 사이가 나빠졌다.
같은 해인 404년 에우독시아도 출산을 하던 중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