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니아누스 1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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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비아누스 | → | 발렌스 (동방) | ||
|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
→ | 그라티아누스 (서방) | ||
| 발렌티니아누스 2세 (중앙) |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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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4년 2월 26일 ~ 375년 11월 17일 (11년 267일) | |||||||||
로마 제국의 제48대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왕조를 열고 제국을 다시 한번 양분해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동생 발렌스를 동로마 제국 황제로 임명했다.
321년생으로 군인 아버지를 따라 세상을 배우고 본인도 군인으로서 성공했다.
356년 콘스탄티우스 2세 시절 율리아누스와 정치적 대립이 심할 때 군에서 잠시 해임되었으며 361년 율리아누스 즉위 후 재등용됐다가 기독교 탄압으로 인해 다시 해임되었다고 전해진다.
363년 요비아누스가 즉위하자 다시 군에 복귀해 장군으로 활약했다.
364년 요비아누스가 죽자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황제로 지목되었다. 그는 얼마 후 동생 발렌스를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꽂아넣었다.
그의 통치 11년은 사실상 이민족과의 전쟁의 역사와 같다. 색슨족, 프랑크족 등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고 프로코피우스나 발렌티우스, 피르무스 등의 반란을 진압했다.
또한 국선변호사 제도와 비슷한 데펜소레스 플레비스라는 것을 도입했고,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이교 제의를 허용했다. 그리고 기독교 사제들이 과부들에게 삥뜯는 것을 금했다.
한편 원로원과는 사이가 드러웠다.
365년에는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라는 도시에서 쓰나미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도시가 파괴되었는데, 총독의 허위 보고 때문에 왜 세금을 안 내냐고 도시 주민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터졌다.
375년 콰디족과의 외교 도중에 화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이후 서로마는 두 아들들에게 나누어졌는데, 첫째 그라티아누스는 서부를, 둘째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중부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