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우스 1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
| 제노 | → | 아나스타시우스 1세 | → | 유스티누스 1세 |
| 재위기간 | |||||||||
|---|---|---|---|---|---|---|---|---|---|
| 491년 4월 11일 ~ 518년 7월 9일 (27년 96일) | |||||||||
| 이 문서는 성군(聖君)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세금 헌터 머똥령들이 본받아야 할 개념 군주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 똥수저 백성들의 편이니 모두 폐하에게 경배합시다. |
로마 제국의 제59대 황제.
레오 왕조의 마지막 황제다. 그러나 레오 왕조와 혈연적 관련은 없으며 오히려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피를 이었는데, 아나스타시우스의 엄마의 할아버지의 외할머니의 아빠가 콘스탄티누스 1세 대제이다.
아마 테오도시우스 왕조를 본 사람이라면 이때도 가문이 단절되는 바람에 외부인을 황녀와 형식상 결혼시키는 방식을 통해 외부인인 마르키아누스를 테오도시우스 왕조에 포함시켰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레오 왕조의 제노가 죽고 나서 제노의 황후 아일리아 아드리아네와 형식상의 결혼을 통해 레오 왕조에 포함되어 즉위했다.
사실 제노의 동생으로 플라비우스 롱기누스라는 적법한 후계자가 있었으나 얘에게 왕위를 넘기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합성론 신봉자로 이단이었기에 반발이 많았다. 일단은 칼케돈파를 따르겠다는 서약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청색당 등의 반발이 지속되었다.
492년에는 앞서 말한 제노의 동생 플라비우스 롱기누스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493년에 전세가 역전되었고 497년 최종 패배하여 498년에 롱기누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다.
493년에는 전임 제노의 요청으로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 대왕이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를 쳐서 멸망시켰다.
불순물이 섞인 동전들을 순수 동전으로 교체하고 세금을 현물 대신 화폐로 납부하게 해 제국의 재정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와 동시 군인 월급이 올라가면서 용병 의존도가 줄고 신민들의 입대가 늘어났다. 군인 월급을 쥐꼬리만큼 주는 21세기 동쪽의 어떤 나라와는 참으로 비교된다.
군인의 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황제가 일일이 전장에 출전하는 일도 없어졌다. 이후 마우리키우스 시대부터 다시 황제가 전쟁에 직접 나가게 된다.
5세기 중후반 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 간의 전쟁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란의 구휼 요청을 이제 막 내전을 끝낸 동로마가 거절하자 502년 카바드 1세가 평화를 깼다. 503년에 이란군을 막아냈으며 훈족의 침입으로 인해 두 나라 모두 싸움을 그만두었다.
507년에서 508년 사이에는 동쪽 국경의 요새 '다라'에 요새를 쌓았고 507년부터 512년까지 수도권에 해당하는 트라키아에 아나스타시우스 성벽을 건설했다.
512년 그는 교회와의 서약을 깨고 합성론자를 칼케돈 주교로 임명했는데, 이에 따라 513년 칼케돈파를 믿던 플라비우스 비탈리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불가리아 지역까지 점령당하며 황제는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515년 합성론을 다시 포기하자 제국군의 단합력과 사기가 올라가 비탈리아누스의 반란은 진압되었다.
518년 7월 9일 사망했고, 죽기 전 근위대장 유스티누스 1세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레오 왕조는 종료되고 유스티니아누스 왕조가 개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