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니아누스 왕조
| 로마 제국의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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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티누스 왕조 | → |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 → | 테오도시우스 왕조 |
| 존속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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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4년 ~ 392년 (28년) | |||||||||
로마 제국의 여섯 번째 왕조.
요비아누스 사후 364년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황제로 즉위하며 들어선 왕조이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동생 발렌스를 서로마 황제로 지명했고,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시기는 로마 제국 동서 분열의 시기였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인물은 볼드체
- 서로마 제국 - 발렌티니아누스 1세
- 동로마 제국 - 발렌스
앞서 말했듯 364년 요비아누스 사후 발렌티니아누스 1세는 황제가 되었다.
그는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동생인 발렌스를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앉혔다.
366년에는 프로코피우스의 반란을 진압했다.
367년부터 369년까지 고트족과 싸웠으며 이 틈을 타 아르메니아에 쳐들어온 사산 왕조 페르시아도 371년에 격퇴했다.
- 서로마 제국
- 서부 - 그라티아누스
- 중부 - 발렌티니아누스 2세
- 동로마 제국 - 발렌스
375년 11월 17일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사망하고 첫째 아들 그라티아누스가 서방 황제가, 둘째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의 황제가 되었다.
376년 고트족이 동로마에 쳐들어오자 발렌스는 서방의 그라티아누스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근데 그라티아누스의 군대 도착이 좀 늦어졌고 378년 8월 9일 발렌스가 직접 고트족과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붙었으나 전사했다.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붕괴 위기에 놓였고, 서로마의 그라티아누스는 테오도시우스 1세를 동로마 황제로 올렸다. 이에 따라 발렌티니아누스 왕조의 강역은 서로마로 한정되었다.
379년에는 그라티아누스가 로마 다신교 최고신관의 자리 '폰티펙스 막시무스' 자리를 포기하고 없앴다.
382년에는 그라티아누스가 이교도 사제들의 재산 상속을 금지하고 특권 및 면책권을 없앤 후 사원들을 폐쇄했다.
383년 이교 탄압 정책으로 인해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반란을 일으켜 그라티아누스를 척결하고 자기가 황제가 되었다.
이로서 서로마의 서쪽도 다른 가문 인물에게 넘어갔고 발렌티니아누스 왕조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등 중부에만 남게 되었다.
384년에는 막시무스가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맺고 서방의 황제로 인정받았다.
이후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와 엄마 유스티나가 기싸움을 벌였다.
387년 막시무스가 협정을 깨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다스리는 영역에 쳐들어왔다. 실제로 잠시 축출되고 테오도시우스가 있는 동로마로 도망갔다. 그러다가 플라비우스 아르보가스트 장군이 막시무스의 군대를 개박살내고 388년에 막시무스를 잡아 죽이면서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다시 서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이후 아르보가스트는 서로마의 실권을 장악하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자기 허수아비처럼 부렸다. 황제의 친구를 뇌물 혐의로 눈앞에서 죽인 일도 있었다.
갈리아에 있는 군대를 이탈리아로 불러오라고 명령했으나 아르보가스트는 듣지 않았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아르보가스트를 해고했으나 아르보가스트는 애초에 너한테 임명된 적 없다며 통지서를 찢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392년 5월 15일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아르보가스트에게 살해당하며 왕조는 막을 내렸다.
아르보가스트는 에우게니우스를 꽂아넣었으나 결국 테오도시우스의 동로마군에게 응징당하고 394년 멸망하며 로마는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손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