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리우스
| 서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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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
→ | 호노리우스 | → | 호노리우스 | → | 호노리우스 | → | 요한네스 |
| 콘스탄티우스 3세 |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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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5년 1월 27일 ~ 423년 8월 15일 (2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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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제국의 제52대 황제.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창립자 테오도시우스 1세의 둘째 아들로 그의 사후 제국 서부를 물려받았다.
즉위하기 전인 393년 에우게니우스라는 놈이 서로마에서 깽판을 치자 아버지로부터 명목상 서로마 황제로 임명을 받았다.
395년부터는 실제로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치세는 너무 노답이었다. 게르만족이 계속 쳐들어왔고, 일을 안 하거나 그나마 일하는 놈들을 팽했기 때문.
그래도 390년대와 400년대에는 명장 플라비우스 스틸리코가 이들의 침입을 잘 막아내기는 했다. 401년에서 403년 사이 알라리크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왔으나 스틸리코에게 막혔다.
이탈리아만 방어하다 보니 변방인 히스파니아, 갈리아, 브리타니아는 그야말로 개지랄이 나 있었다. 이 와중 407년 콘스탄티누스 3세라는 인물이 브리타니아를 독립시키고 반란을 일으켰다. 얼마 안 가 갈리아와 히스파니아까지 다 먹으면서 서로마는 큰 위기에 처했다.
400년대 후반의 로마 제국 서부는 알라리크의 서고트 vs 서로마의 호노리우스 vs 변방의 콘스탄티누스 3세 구도였다.
그런데도 408년 호노리우스는 명장 스틸리코를 숙청해버렸다. 이후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은 스틸리코의 복수를 천명하며 한 번 더 쳐들어오고, 호노리우스는 라벤나에 숨어들어갔다.
이후 409년 알라리크에 의해 프리스쿠스 아탈루스가 옹립되나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410년에 팽했다. 같은 해 로마는 점령되어 철저히 약탈당하고 살육과 강간, 파묘 파티가 벌어졌다.
같은 해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호노리우스는 브리타니아를 팽하고 영토 포기 선언을 하며 너네가 알아서 지키라고 답장했다. 이로서 영국의 로마 시대는 끝이 나고 영국사가 시작되었다.
정말 다행히도 아직 서로마에는 콘스탄티우스 3세라는 장수가 남아있었다. 먼저 변방에서 독립한 콘스탄티누스 3세 세력을 박살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3세의 부하로 히스파니아에서 깽판치던 게론티우스 및 그가 황제로 앉힌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까지 박살냈다.
진짜 다행히도 호노리우스는 이번에는 콘스탄티우스 3세를 숙청하지 않았고 421년 공동황제로까지 앉혔다. 그러나 바로 그 해 병으로 콘스탄티우스 3세가 죽어버렸다.
그의 치세 동안 이교는 철저히 억압과 추방의 대상이 되었다.
423년 8월 15일 사망했으며, 콘스탄티우스 3세의 아들이자 황위 계승자인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본인의 의심병 때문에 엄마와 함께 동로마 제국으로 망명한 상태라서 황위 계승자가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한낱 범부였던 하급 관리(문서 관리인) 요한네스를 황제로 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