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누스 왕조
| 로마 제국의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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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 왕조 | → |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 → | 이라클리오스 왕조 |
| 존속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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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년 ~ 602년 (84년) | |||||||||
로마 제국의 아홉 번째 왕조.
레오 왕조가 단절된 이후 유스티누스 1세가 황제가 되며 등장한 왕조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라는 성군을 배출하여 동로마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한 시대이기도 하나, 몇 번의 실책으로 다시 쇠락기에 접어들었으며 포카스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부자 계승은 한 번도 없었으며 처음 두 번(유스티니아누스 1세, 유스티누스 2세)은 외조카 상속, 그 다음(티베리우스 2세)은 양자 입적을 통한 상속, 마지막(마우리키우스)은 사위를 통한 상속이었다.
이라클리오스 왕조부터는 제국의 공식 언어를 그리스어로 바꾸므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까지는 명칭을 라틴어로 표기한다. 다만 이미 이때도 동로마는 대부분 그리스어를 쓰고 있었다.
이슬람이라는 폭풍이 불기 이전인 6세기에 존재한 왕조였다. 비슷한 시기 서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이 있었고 동쪽에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자주 전쟁을 벌였다. 동북쪽에는 페르시아를 공적으로 둬 사실상 동맹이었던 돌궐이 있었다.
그 돌궐은 또 중국의 북조 국가들과 수나라를 적으로 두고 있었으며 고구려와 동맹이었다. 그 고구려는 또 한창 성장하던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백제와 연합했고 백제는 또 일본 열도의 야마토라는 정권을 돕고 있었다.
로마 본인들은 몰랐겠지만 의도치 않게 돌궐을 중심으로 로마-돌궐-고구려-백제-일본이라는 동맹의 띠가 만들어졌으며 각각 페르시아, 북조, 신라를 겐세이 놓고 있던 셈이다. 훗날 페르시아 왕자가 당나라를 넘어 신라로 토낀다는 전설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518년 레오 왕조의 마지막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죽기 직전 유스티누스 1세를 황제로 임명하며 탄생했다. 그는 문맹이어서 외조카 페트루스 사바티우스의 도움을 받아 통치했다.
527년 유스티누스 1세 사후 외조카 페트루스 사바티우스가 유스티니아누스 1세라는 이름으로 황제로 즉위했다. 그는 초기부터 로마법 대전 편찬 등의 업적을 남겼다.
532년에는 니카의 반란을 진압했다.
533년부터는 고딕 전쟁을 일으켜 지중해 대부분의 영토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534년에는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553년에는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멸망시켰다.
541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돌아 인구의 20~30%가량이 증발했다.
562년에는 고딕 전쟁을 이끈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모함을 당해 강제 은퇴했으나 563년 복권되었다.
565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 대제가 죽고 조카 유스티누스 2세가 즉위했다. 그의 치세 동안에는 대제 때 얻은 땅들을 많이 빼앗겼다.
574년 유스티누스 2세의 정신병으로 황후 소피아가 대신 통치했으며 티베리우스 2세가 부황제로 지목됨과 동시에 유스티누스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578년 유스티누스 사후 양자 티베리우스 2세가 황제로 즉위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많은 돈을 뿌려 제국의 재정을 낭비했고, 이후 마우리키우스 때 재정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582년 티베리우스는 페르시아와의 싸움에서 활약한 마우리키우스를 사위로 들였으며 티베리우스 사후 마우리키우스가 즉위했다.
584년 라벤나 총독부를, 591년 아프리카 총독부를 설치했다. 마우리키우스는 티베리우스 시절 낭비된 국고를 아끼기 위해 군 봉급 등을 줄였고 민심이 나빠졌다.
602년 아바르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포카스의 복귀를 막으면서 포카스의 반란으로 이어졌고, 결국 포카스의 반군들에게 마우리키우스의 가족이 붙잡혀 황제와 아들들이 처형당했다. 이로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는 84년만에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