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티아누스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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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렌스 (동방) |
→ | 테오도시우스 1세 (동방) | ||||
|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
→ | 그라티아누스 (서방) |
→ | 마그누스 막시무스 | ||
| 발렌티니아누스 2세 (중앙) |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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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5년 11월 17일 ~ 383년 8월 25일 (8년) | |||||||||
로마 제국의 제49대 황제.
참고로 1968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이 열린 프랑스 그르노블이 그라티아누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의 개창자이자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첫째 아들로서 제국의 서부인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일대를 물려받았다.
얼마 후 판노니아에서는 다른 장군들이 동생인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추대했고, 그라티아누스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일리리쿰 즉 제국의 중앙을 지배하는 황제로 인정했다.
378년 동로마 제국의 발렌스가 고트족과의 싸움에서 구원병을 요청하자 달려갔으나, 중간에 알레만니족과 싸우게 되면서 늦게 도착했고 결국 도착하기 전에 발렌스가 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그라티아누스는 동로마 황제로 테오도시우스 1세를 임명했다. 그라티아누스 즉위 때 그의 아버지인 대 테오도시우스를 반역자로 처형한 바가 있는데 복권시키고 황제 자리에 앉힌 것이다.
그라티아누스의 안목은 옳았다. 좆망 위기에 처한 동로마를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살리고 381년에 제국 안에 있던 고트족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라티아누스는 라인 강에서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낸 후 이교도 및 아리우스파를 금지하는 칙령을 내렸다. 379년에는 이교도 관습을 없애기 위해 전통적으로 로마 황제들이 부임하던 로마 다신교 최고신관의 자리 '폰티펙스 막시무스' 자리를 포기하고 없앴다.
382년에는 이교도 사제들의 재산 상속을 금지하고 특권 및 면책권을 없앤 후 사원들을 폐쇄했다.
이러한 기독교 진흥 및 이교 탄압 정책은 결국 383년 마그누스 막시무스의 반란으로 이어졌고, 휘하의 군단들이 배신하면서 결국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