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리우스 2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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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스티누스 2세 | → | 티베리우스 2세 | → | 마우리키우스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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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8년 9월 26일 ~ 582년 8월 14일 (4년) | |||||||||
로마 제국의 제63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와 혈연적 관련은 없으나 정신병에 걸린 유스티누스 2세를 대신해 황후 소피아로부터 부황제로 지목되었고 황제까지 등극했다.
티베리우스라는 이름은 로마 제국 제2대 황제의 이름으로, 이 6세기의 티베리우스 2세와 구분하려고 1세기의 티베리우스는 티베리우스 1세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인지도 자체가 1세기 티베리우스가 압살이라 보통은 그냥 티베리우스라고 한다.
570년 아바르족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바 있으며 그 이후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자 평화조약을 주도했다.
유스티누스 2세가 정신병에 걸려있던 시기로 사실상 이때도 티베리우스 2세의 통치기간이나 다를 바 없다.
황제 대신 통치하던 황후 아일리아 소피아에 의해 공동 통치자로서 574년 페르시아와의 평화 조약을 주도했으며 같은 해 12월 7일 유스티누스 2세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뜯긴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뭔가 해보려고 했다. 페르시아를 통수칠 준비를 했으며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롬바르드족을 막기 위해 프랑크 왕국과의 동맹도 시도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실패했다.
578년 9월 26일 공동 황제로 임명되었고 10월 5일 유스티누스 2세가 사망하자 단독 황제가 되었다.
페르시아, 롬바르드, 베르베르 등 인근 국가 및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발칸 반도가 아바르, 슬라브 등에게 개통당했다.
또한 580년 군인들에게 급여가 자꾸 늦게 지급되어 폭동 각이 나왔는데 마우리키우스를 보내 진압했다.
581년에는 마우리키우스를 보내 페르시아를 통수쳤으며 나름 큰 타격을 입혔다. 이번에도 그만 싸우자노를 시전하며 발을 빼려는 동로마였으나 개빡친 페르시아의 호르미즈드 4세가 협정 체결을 거부하며 전쟁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포퓰리스트로서 일이 안 풀린다 싶으면 시민들에게 돈을 막 뿌리는 유형의 인간이었고 이 때문에 재정 상태가 나빠졌다.
582년 8월 14일 죽기 직전 자기 딸과 마우리키우스를 결혼시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를 연장시키고 사망하여 황위는 마우리키우스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