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키우스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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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리우스 2세 | → | 마우리키우스 | → | 포카스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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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2년 8월 14일 ~ 602년 11월 27일 (20년 106일) | |||||||||
로마 제국의 제64대 황제.
티베리우스 2세의 사위가 되는 방식으로 제위를 이은 양반으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다.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수나라 문제와 재위기간이 얼추 비슷하다. 나름 일을 잘했지만 한 가지(문제는 자식 교육, 마우리키우스는 민심 관리)를 못해서 결국 좆된 것까지 비슷하다.
이 둘의 활동이 끝나고 찾아올 7세기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적 지각변동이 미친듯 일어났던 혼란기로 많은 나라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중세로 넘어가게 된다.
539년생으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올라왔으며 560년대 언제쯤부터 티베리우스 2세의 따까리로 들어갔다.
티베리우스 2세 휘하에서 폭동 진압, 페르시아군 격퇴 등의 군공을 세운 그는 582년 8월 13일 티베리우스의 딸 콘스탄티나와 혼인, 바로 다음날인 8월 14일 티베리우스가 죽으며 황제가 되었다.
580년대는 아바르, 슬라브, 롬바르드, 페르시아 등과의 전쟁이 계속되던 시기였다. 582년 아바르족에 의해 시르미움을 점령당했고 584년 슬라브족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포위될 뻔한 적이 있었다.
584년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라벤나에 '라벤나 총독부'를 설치했다.
586년 페르시아와의 솔라콘 전투에서 훗날 황제가 되는 이라클리오스의 아버지 대 헤라클리우스가 활약했다.
591년 카르타고에 아프리카 총독부를 설치했다. 같은 해 사산 왕조의 찬탈자 바흐람 추빈을 격파하면서 호스로 2세의 복위를 도왔다. 그 대신 아르메니아와 캅카스 땅을 받아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같은 해 발칸 반도에서 반격을 개시해 592년 시르미움을 탈환, 599년까지 아바르족을 도나우 강 위로 쫓아냈다.
전임 티베리우스가 돈을 왕창 써버리는 바람에 마우리키우스는 재정을 매우 아껴야 했는데, 이때 군인들의 급여도 깎이고 포로로 잡힌 군인들의 몸값조차 아끼며 그들이 학살당하게 만들었다. 이로서 그의 민심은 점차 나락가기 시작했다.
597년 그는 넓어진 제국을 4세기 때 했던 사두정치처럼 여러 개로 쪼개서 통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602년 반란으로 무산되었다.
602년 그는 아바르족과의 평화를 깨고 침입하여 큰 승리를 거둔다. 문제는 이때 장군으로 보내 큰 승리를 거둔 포카스에게 '돌아오지 마라 거기서 살아라'를 시전해버리는 바람에 빡친 포카스와 그 수하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안그래도 위에서 말한 사유로 민심이 나빴는데 반란이 일어나니 많은 시민들이 포카스의 편에 붙었다. 마우리키우스는 가족과 함께 토꼈으며 602년 11월 23일 포카스는 스스로 황제를 선포했다.
마우리키우스 가족은 11월 27일에 붙잡혀 남자 구성원들은 전부 효수당해 죽었으며 여자 가족들은 수녀원에 감금했다. 마우리키우스의 명으로 높은 세금을 거둔 관료들도 사형당했고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소속의 황위 계승권자들도 전부 쳐죽였다. 시민들은 마우리키우스의 죽음에 환호했다.
이로서 동로마의 전성기를 다시 가져올 뻔 했던 유스티니아누스 왕조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시민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세운 포카스가 동로마 역사상 최악의 황제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