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시우스 왕조
| 로마 제국의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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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 → | 테오도시우스 왕조 | → | 레오 왕조 |
| 존속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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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4년 ~ 455년 (서로마, 61년) 379년 ~ 457년 (동로마, 78년) | |||||||||
로마 제국의 일곱 번째 왕조.
이 시기 분할통치로 동서가 갈린 이후 다시는 통합되지 못했다. 따라서 서로마와 동로마의 테오도시우스 왕조를 따로 서술한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명군이었으나 두 아들인 호노리우스와 아르카디우스는 개노답 인간들이었다. 동로마는 그나마 외적의 침입에 잘 맞섰으나 서로마는 버티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열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똥양에서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가 열렸고 한국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활약하던 시절이다.
테오도시우스 왕조 소속 황제는 볼드체
379년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소속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동로마 황제로 테오도시우스 1세를 임명하며 시작되었다.
388년 플라비우스 아르보가스트를 파견해 서로마의 마그누스 막시무스를 몰아내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황제직 복귀를 도왔다.
392년 아르보가스트가 반역을 일으키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죽인 후 에우게니우스를 옹립하자 2년 동안 전쟁을 벌이며 아르보가스트 세력을 척결했고, 394년 통일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395년 사망하면서 제국은 다시 두 아들들에게 나누어졌고 분할 통치에 접어들었다.
호노리우스가 서로마의 황제로 즉위했다. 그의 치세는 계속된 외부 민족의 침입과 내부 반란으로 점철되었다.
407년에는 콘스탄티누스 3세라는 반란자가 브리타니아에서 황제를 참칭했다.
408년 호노리우스는 제국의 명장인 플라비우스 스틸리코를 모함으로 숙청했다. 이에 따라 서고트의 알라리크가 로마를 침공했다.
409년에는 반란자 콘스탄티누스 3세가 콘스탄스 2세를 공동 황제로 지목했다.
410년 서고트의 알라리크가 프리스쿠스 아탈루스를 황제로 내세웠으나 반응이 좋지 않아 팽했으며, 로마를 철저히 약탈했다.
같은 해 호노리우스는 브리타니아 속주를 포기했으며, 히스파니아에서는 반란자 게론티우스가 콘스탄티누스 3세를 배신하고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414년 서고트의 아타울프가 프리스쿠스 아탈루스를 다시 황제로 옹립했으나 416년에 팽하고 로마로 압송했다.
417년에는 히스파니아의 게론티우스와 막시무스가 진압당했으며, 이를 진압한 장수는 421년에 공동 황제로 오른 콘스탄티우스 3세였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 3세는 1년도 가지 않아 사망했고, 423년 호노리우스도 사망하며 요한네스라는 문서 관리인이 황제로 옹립되었다.
425년 동로마 제국군이 요한네스를 몰아내고 콘스탄티우스 3세의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서로마 황제로 앉혔다.
451년 훈족의 아틸라가 침입했으나 이를 격퇴했으며, 452년 아틸라의 재차 침입으로 혼란에 빠졌으나 453년 교황 레오 1세가 외교를 시도해 몰아냈다.
454년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제국의 실권자였던 아에티우스를 살해했다.
455년 아에티우스의 잔당이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의 사주로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살해하며 서로마의 테오도시우스 왕조는 막을 내렸다.
아르카디우스는 제국의 동부를 물려받았다.
395년에는 루피누스가 섭정을 했으며 396년부터는 에우트로피우스가, 400년에는 그룰 몰아낸 가이나스가 잠깐 군권을 잡았다가 쫓겨나고 황후 에우독시아가 실권자가 되었다.
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관련 문제로 그를 지지하는 서로마의 호노리우스와 반대하는 아르카디우스 및 에우독시아가 서로 갈등을 빚었다.
408년 아르카디우스 사후 테오도시우스 2세가 즉위하고 안테미우스가 섭정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지어졌다.
414년 황제의 누나 아일리아 풀케리아가 섭정을 맡았으며, 421년에는 아일리아 에우도키아가 황후가 되었다.
427년 네스토리우스파를 이끄는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되었으나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 때 풀케리아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로스에 의해 파문되었다.
438년에는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 3세와 함께 테오도시우스 법전을 만들어 제국 전체에 적용했다.
443년에는 황후 에우도키아가 축출되어 예루살렘으로 떠났으며 환관 크리사피우스가 실권자가 되었다.
449년 크리사피우스가 훈족의 아틸라 암살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고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450년 테오도시우스 2세가 사망하고 마르키아누스가 풀케리아와 형식상의 결혼을 하여 즉위했다. 그는 훈족에게 바치는 공물을 폐지하고 크리사피우스와 노무스를 숙청했다.
451년에는 칼케돈 공의회가 개최되어 예수에게 인성과 신성이 모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단성론파 등을 정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