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로 2세
| 사산 왕조의 샤한샤 | ||||
|---|---|---|---|---|
| 호르미즈드 4세 | → | 호스로 2세 (1차) |
→ | 바흐람 추빈 |
| 바흐람 추빈 | → | 호스로 2세 (2차) |
→ | 카바드 2세 |
| 이집트의 군주 | ||||
| 이라클리오스 로마 제국 |
→ | 호스로 2세 | → | 카바드 2세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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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0년 (1차) 591년 ~ 628년 2월 28일 (2차, 37년) | |||||||||
사산 왕조의 제27대, 제29대 샤한샤.
로마 제국의 포카스 및 이라클리오스와 겨뤄 로마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으며 시리아, 레반트, 이집트, 아나톨리아, 아르메니아 등을 장악했으나 마지막에 로마의 대반격을 받아 오히려 멸망 위기에 놓여 아들의 쿠데타로 죽음을 맞았다.
570년대생으로 선왕 호르미즈드 4세 시기 돌궐과 로마 제국이 연합하려 하자 바흐람 추빈을 보내 돌궐을 몰아냈고 호스로는 수도 크테시폰으로 소환되었다.
그러나 호르미즈드가 바흐람 추빈을 개차반으로 취급하자 589년 극대노한 바흐람 추빈이 반란을 일으켰다.
호르미즈드는 도망쳤으나 590년에 비스탐 등이 그를 죽이고 호스로 2세를 옹립했다.
바흐람 추빈은 본인도 호르미즈드를 죽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놓고 호스로 2세가 즉위하자 '이 패륜아 새끼'를 시전하며 그와 싸웠다.
결국 즉위하자마자 호스로는 아내, 비스탐 및 귀족들과 함께 로마 제국으로 튀었다.
591년 호스로는 로마의 나르세스 등과 함께 쳐들어와 바흐람 추빈을 제거하고 다시금 샤한샤로 즉위했다.
그는 602년까지 로마의 마우리키우스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으며 두 나라 간의 화친이 이어졌다.
한편 비스탐의 권력이 너무 커지자 그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내전이 이어졌다.
602년 로마에서 포카스가 마우리키우스 일가를 쳐죽이고 집권하자 그의 복수를 천명하면서 603년에 로마를 침공했다.
604년 다라 요새를 점령했다.
607년 국경 일대를 사산군이 완전히 휩쓸었다.
608년 칼케돈까지 진격해 무력 시위를 벌였다.
609년 사산군이 에데사를 점령했다.
610년 이라클리오스가 포카스를 몰아내고 로마의 다음 황제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했다.
611년에는 시리아 속주와 아나톨리아 속주를 점령했다.
613년에는 대교구 안티오크와 다마스쿠스가 페르시아군에게 넘어갔다.
614년에는 대교구이자 성지 예루살렘을 정복해 성십자가가 페르시아에 넘어갔다.
617년 호스로 2세의 사산군은 보스포루스 해협 인근 칼케돈으로 진격했다.
619년 세 번째 대교구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며 아이깁투스 즉 이집트를 손에 넣었다. 621년까지 이집트 내 동로마 잔존 세력이 일소되었다.
622년에는 페르시아가 로도스 섬까지 점령했다. 같은 해 아라비아에서는 무함마드가 12년간 규합한 무슬림들을 이끌고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동했다.(헤지라)
이렇게 사산 왕조는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와 흡사한 영토를 갖게 되었으며 동로마를 거의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줄 알았으나, 이라클리오스는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622년부터 로마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는데, 이라클리오스는 아야 소피아의 금까지 뜯어내면서 성금을 모으고 대규모 군대를 조직했다.
페르시아군은 (훗날 찬탈 샤한샤가 되는) 샤흐르바라즈가 이끌고 있었는데, 이라클리오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624년 이라클리오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사산 왕조 페르시아 본토가 공격당해 아르메니아를 정복당했다.
626년 호스로 2세가 아바르족을 회유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입하나(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해군으로는 로마를 이길 수 없었다. 또한 이라클리오스의 부대가 셋으로 나뉘어 하나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갔다. 다른 하나는 테오도로스의 부대로 사힌과 싸웠으며 나머지 하나는 이라클리오스가 이끌었다.
테오도로스는 사힌을 박살내고 627년 페르시아와 적대관계였던 서돌궐을 회유해 페르시아 침입을 유도했다.
627년 12월 과거 신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에서 동로마군에게 개박살났다. 이로서 오히려 페르시아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628년 수세임에도 계속 전쟁을 이어나가려는 호스로 2세의 행보에 반발한 아들 카바드 2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샤한샤가 되었다. 이후 사산 왕조는 멸망 테크를 밟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