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 이 문서의 주인공은 루프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죽창으로 관통해도 시간을 되돌려 살아나는 루프물의 주인공이니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근데 가끔씩 너가 이 루프물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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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사건이 동일한 순서로 영원히 반복된다는 개념. 원래는 스토아학파 등에서 주장했으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를 명시적으로 부정한 뒤 한동안 잊혔다. 그러다가 니체가 1881년 이 개념을 부활시켰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구체적으로는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로 불린다. 이 개념이 고대의 유사 개념과 구별되는 것은 니체가 이 개념을 우선 기존의 세계관을 부정하기 위해 주창했기 때문이다. 니체의 견해에 기독교에서는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를 갈망하게시키고, 현대의 사회주의 같은 이념들 역시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를 갈망하게시키며 이러한 세계관을 반복해왔다. 그런데 니체의 영원회귀에 의하면 현재의 삶이야말로 유일하면서 절대적인 진실이 되고, 미래야말로 절대적인 허구가 되는 것이다. 결국 여태까지 갈망되던 영원한 평화, 편안함은 죽음에서조차 성취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영원회귀를 단지 수용하는게 아니라 긍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영원회귀가 긍정될 때 비로소 의지와 세계가 일치되는 것이며, 그러한 일치가 곧 '아무것도 다르기를 원치 않는 것', 일종의 신과도 같은 상태, 즉 '초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영원회귀야말로 형이상학의 전개의 최종귀결이라고 주장했다. 여태까지 형이상학은 영원성, 동일성, 시간, 현상 등을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왔는데, 니체의 영원회귀야말로 가변적인 것은 불변적인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마침내 그 목표를 이뤘다는 것이다.
반면 들뢰즈는 니체의 영원회귀는 가변성을 가장 우위에 놓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립했다. 그러나 들뢰즈의 해석은 니체가 어디까지나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를 주장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5분뚝딱철학의 김필영은 니체의 영원회귀는 정말로 현재의 영원성을 말하기보다는, 앞으로의 순간들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게끔 살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니체가 과거 역시 긍정할 것을 설파한 사실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게오르크 짐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이 이러한 영원회귀의 실재성을 반박한 적 있다. 가장 주된 논거는 시간의 무한성이 가능성의 유한성과 대립되면서 영원회귀가 주장되는 것일텐데, 가능성이라는 것은 사실 유한한 것이 아니고, 니체 본인도 원자와 같은 절대적인 물리적 단위들을 부정함으로써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보르헤스는 영원회귀를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생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은 니체가 진정으로 의도했던 바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니체의 유고에서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 등을 통해서 영원회귀를 근거지으려한 흔적들이 어느정도 있어서, 이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대개 네 가지 견해로 나뉜다.
- 니체는 객관적 사실을 부정했던만큼 니체는 애초에 영원회귀를 이런 식으로 증명하려한 적이 없고, 단지 지적 유희의 일부일 뿐이라는 식의 견해.
- 니체가 정말로 이러한 물리법칙들로 영원회귀를 증명하려했다는 견해.
- 니체가 영원회귀를 증명하려고 했으나, 중간에 그냥 포기했다는 견해.
- 니체가 영원회귀를 증명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단지 독자들에게 영원회귀가 더 충격적이고 설득력있게끔 보이려고 시도해보면서 그랬을 뿐이라는 견해.
하지만 어떤 견해를 취하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니체가 영원회귀를 제시한 의도, 즉 자신의 삶을 어느수준까지 긍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는 것이 정설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장에서부터 니체의 영원회귀를 언급하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