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뤼흐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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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뤼흐 스피노자 | |
| 생년월일 | 1632년 11월 24일 |
|---|---|
| 사망일 | 1675년 2월 21일 |
| 직업 | 안경제작자, 철학자 |
| 종교 | 무종교 |
네덜란드의 철학자. 또한 네덜란드의 유명 철학자로는 마지막으로도 볼 수 있는데 스피노자 사후로 그에 필적할만한 철학자가 나온 적이 없다.
원래는 유대인 출신이었지만 본인의 독특한 사상으로 인해 유대교에서 파문당했다. 또 가톨릭한테서도 모든 저서가 금지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자신을 증오한 사람한테 살인미수를 당한 적도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살아생전부터도 자신을 지지하고 후원하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본인은 다른 사람들한테 금전적으로 휘둘리지 않겠다며 거부하고 평생토록 안경 제작과 철학 저술을 병행했다.
철학
스피노자의 주저인 에티카는 신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선 신의 존재를 존재론적 증명(신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식의 주장), 우주론적 증명(신이 아니라면 무엇이 궁극 원인이 되겠느냐는 식의 주장) 따위를 통해서 '논증'하고, 신의 속성들에 대해 말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신이 그 피조물과 구분된다는 생각은 신의 무한함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배격돼야하고, 신의 바깥에 그 무엇이건 존재한다고 여겨질 수 없으며, 따라서 신에게 아무런 외재적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주장은 '신'은 결국 우주 그 자체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간 역시 신의 일부로서 '신성함'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신과 일치되어 갈 수 있으며 정념에서부터 해방되고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념으로부터의 해방은 스토아철학, 행복에 대한 추구는 에피쿠로스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원래는 서로 대립하던 두 경향을 통합하려고 노력한 스피노자의 계획이 나타난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인간관이 기존의 유대기독교 사상과 대치되는 부분은 에티카에서의 '증명'들 중 하나인 정념을 억제하기 때문에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누리기 때문에 정념을 억제할 것이라는, 행복을 더욱 우선시하는 그의 입장에서 드러난다.
논란과 비판
스피노자의 철학은 살아생전에서부터 심각한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위장된 무신론자 의혹은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떡밥이다. 스피노자가 주창하는 맹목성과 필연성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도 논란이라고 할만한데, 이와 관련해서 스피노자가 정말로 숙명론자인지가 특히 논쟁대상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개성과 역사적 진보의 개념이 설 곳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가짜 어록
'세계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대개 스피노자 것으로 전해지지만, 사실이 아니다. 저 어록은 스피노자의 어느 저작에서도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아예 출처불명이다. 스피노자의 입장에 신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이기에 애초에 세계가 멸망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가짜 어록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하다못해 지식채널e의 2011년자 영상에서조차도 이를 반박하는 얘기가 나온다.
'바오로가 베드로에 대해 말하는 것은 베드로보다 바오로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말 역시 스피노자의 것으로 지칭되곤 하지만, 이 역시 문헌적 근거가 부족하다.
영향
스피노자는 흔히 생각되는 것보다도 엄청나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스피노자의 영향은 대개 철학과 문학 부분으로 나뉘지만 이외의 영역에서도 영향을 끼쳤다.
철학
19세기에 스피노자 철학의 영향이 가장 컸던 곳은 독일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은 비록 스피노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동시에 철학을 하기 위해선 먼저 스피노자를 배워야한다, 스피노자주의자이거나 아예 철학자가 아니다와 같은 어록을 남겼다. 헤겔좌파에 속하던 포이어바흐와 엥겔스도, 헤겔과 대립하던 셸링과 쇼펜하우어도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다.
니체는 스피노자의 저서를 읽고서는 스피노자를 자신의 선구자라고 부르며 예찬했지만, '선악의 저편'에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영향은 니체의 평생토록 지속됐다고도 평가된다.
20세기 초반에는 유럽 전반적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적 영향이 확대됐는데, 특히 베르그송, 산타야나, 러셀, 야스퍼스, 비트겐슈타인 등이 영향을 받았다. 러셀은 스피노자를 위대한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사랑할만하다고 부르기까지 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알튀세르, 들뢰즈, 네그리 등의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엄청 찬양하면서 철학자들의 왕, 철학의 그리스도라고까지 불렀다.
문학
문학계에서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인물들 중에는 다름 아닌 사드 후작이 있다. 사드는 스피노자가 주창한 인간에 대한 신의 무관심, 신의 필연성, 선악 개념의 인위성 등을 받아들이고는 본인 식으로 뒤틀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뒷받침하는 식으로 썼다.
비슷한 시기에 괴테, 고트홀드 레싱도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다. 19세기 초반에는 하인리히 하이네가 스피노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는데, 모든 우리의 동시대 철학자들은 어쩌면 알지도 못하는채 바뤼흐 스피노자가 정제한 안경을 통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톨스토이도 스피노자를 존경해서 자신의 저작에 인용했다.
20세기에는 헤르만 헤세, 니코스 카잔차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같은 시인들이 스피노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기타
다름아닌 게오르크 칸토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스피노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일론 머스크가 자신은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고 발언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