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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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이론을 토대로 구체화, 제도화한 이론

레닌 생전에는 레닌주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진 않았고, 기껏해야 볼셰비즘 정도가 쓰였다. 레닌주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레닌이 죽고 우상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는 레닌의 모든 주장이 심지어는 러시아 내전 와중에도 모든 볼셰비키에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론

전술

노농동맹론

멘셰비키가 노동계급은 자유주의 정치인들과 동맹해야한다고 주장하자 레닌은 이에 반대하면서 노동계급은 농민들과 동맹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 이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다소 차이가 있는데,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혁명의 주체를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에만 두고, 농민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라는 식으로 경시했었기 때문이다. 낫과 망치가 교차된 ☭️ 이 상징이 바로 노농동맹을 의미한다.

민족해방론

원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국제지향이기 때문에 민족문제에 천착하는 것은 국제주의를 흐리는 것이라고 여겨 반대하곤 했었다. 하지만 레닌은 피지배민족의 해방을 일단은 지지해야 혁명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민족문제에도 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민족의 실체성과 영구성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에는 계속 반대할 것을 주장했다.

민주집중제

체제에서 어떤 정책에 대한 '민주적 합의'가 있으면 모든 구성원들이 그에 따라야한다는 민주집중제를 주장했다. 레닌은 이런 방식이야말로 '민주적 합의'가 진정으로 의미있고 그에 대한 책임도 지게 만든다는 식으로 이를 정당화했다. 당연히 스탈린 정권에서 손쉽게 왜곡되고 말았다.

전위대론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의 혁명단체는 당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레닌은 혁명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당을 특별히 지도하는 전위대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혁명적 패배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멘셰비키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은 그래도 자국 진영이 더 낫다며 전쟁 노력을 지지했다. 레닌은 이에 반대하면서, 프롤레타리아는 현재와 같은 제국주의 시대에서 자국의 전쟁 승리에서 실질적으로 얻을 것이 없으며, 오히려 자국 진영의 군사적 패배를 이끌어야만 제국주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볼셰비키는 더욱 강경하게 전쟁 반대를 주장했고, 결국에는 멘셰비키를 타도하기에 이른다.

좌익 분파들에 대한 입장

노동귀족론 및 사회배외주의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민주의자들의 배신에 충격받은 레닌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고심했다. 그 결과 노동귀족론을 정립했는데,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착취를 통해 벌어들인 이윤 중 일부를 이용해 주요 노동조직 간부들을 매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노동귀족들이 더욱 반동적이게 돼서, 국수주의 성향을 띄면 사회배외주의가 된다는 것이다. 레닌 사후에는 사회배외주의를 넘어 아예 사회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는 현대에 노동귀족이라는 용어가 좌파보다는 오히려 우파에서 쓰이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쨌거나 노동귀족론에는 문제가 있는데, 가령 노동조직이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매수됐는지에 대해 레닌도 꽤나 모호하게 서술했다. 또 지노비예프는 군수산업 노동조직들도 매수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러시아 혁명 때 군수산업 노동조직들이 혁명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를 반증하고 말았다. 그리고 현대의 경제통계가 레닌이 주장한 방식의 매수는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입증한다는 주장도 있다.

초좌익주의 배격

당시 극좌파(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좌익공산주의 등등)는 부르주아 선거 참여도 결국에는 혁명으로 직결될 수 없는데 왜 하냐는 식으로 반대했었다. 하지만 레닌은 그런 선거나 개혁운동이라도 자본주의의 문제를 폭로하고, 노동자들에게 정치참여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순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고대하는 이는 결코 그런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말이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그런 극좌파들더러 기회주의자라는 식으로 욕해댔다.

기타 입장

독일제국빠

조상들 중에 독일인이 있던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이 아주 규율있게 전시경제, 군대 등을 굴리는 것을 보고는 감명받아서 볼셰비키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야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제국이 망하고 독일군이 항복한 이후에도 레닌은 독일제국을 여전히 본받아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런 군국주의 경향이 러시아 내전과 레닌 사후의 스탈린 정권과 맞물리면서 결국 공산당은 더욱 권위주의적이게 된다.

종교에 대한 입장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일반 시민은 종교가 '사적인' 문제가 되지만, 전위대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종교를 공격하고 무신론을 설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에 종교인이 입당하는 것을 용인했지만, 어디까지나 공산주의를 인정하고 무신론 설파 등을 용인하는 조건 안에서만 그랬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일부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건신주의라고 해서, 프랑스 혁명기의 '최고 존재의 제전'마냥 신흥종교를 만들어서 기존 종교의 대용으로 쓰자는 운동이 있었다. 레닌은 이를 극심하게 비난했는데, 특히 한 때 건신주의를 지지했던 고리키한테 보낸 편지에서 '신에 대한 어떤 생각이건 가장 끔찍한 쓰레기'라고 거의 욕을 퍼부었다.

실천에 있어서 10월 혁명 초기에 볼셰비키는 명목상으로는 각종 종교적 소수자들한테 주장된 종교의 자유를 선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집권한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이미 수천명의 성직자들을 감금하거나 처형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런 레닌의 이중적인 견해에 대해 스탈린주의자들은 배제적인 부분만 강조해서 종교탄압을 정당화하고, 클리프주의자들은 관용적인 부분만 강조해서 종교인 옹호를 정당화하는 등 각종 정파에서 왜곡이 상당히 됐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레닌 자신은 스스로를 레닌주의자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레닌 사후에 곧바로 레닌주의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서 스탈린 측이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명칭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초기에 스탈린주의자들 외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스탈린 사후에 스탈린과는 이념적으로 거리가 한참 먼 흐루쇼프, 고르바초프 등도 스스로를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여겼기 때문에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스탈린주의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레닌주의를 토대로한 공산주의 분파사상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