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K-위키
왕국 로마 제국 황제 목록
아이깁투스 파라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BC 27-AD 68
1 아우구스투스 | 2 티베리우스 | 3 칼리굴라 | 4 클라우디우스 1세 | 5 네로
네 황제의 해
69
6 갈바 | 7 오토 | 8 비텔리우스 | 9 베스파시아누스
플라비우스
69-96
9 베스파시아누스 | 10 티투스 | 11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96-192
12 네르바 | 13 트라야누스 | 14 하드리아누스 | 15 안토니누스 피우스 | 1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루키우스 베루스 | 17 콤모두스 |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193
18 페르티낙스 | 19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비정통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비정통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20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1)
193-235
20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21 카라칼라&게타
듣보잡들 22 마크리누스&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2)
193-235
23 엘라가발루스 | 24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여섯 황제의 해
238
25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26 고르디아누스 1세&고르디아누스 2세 | 27 푸피에누스&발비누스 | 28 고르디아누스 3세
군인 황제 시대
235-284
29 필리푸스 아라부스&필리푸스 2세 | 30 데키우스&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31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호스틸리아누스&볼루시아누스 | 32 아이밀리아누스 | 33 발레리아누스&갈리에누스 | 34 갈리에누스 | 35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36 퀸틸루스 | 37 아우렐리아누스 | 38 타키투스 | 39 플로리아누스 | 40 프로부스 | 41 카루스 | 42 누메리아누스&카리누스
동전 황제 ? 스폰시아누스 | ? 실반나쿠스
통일
284-293
43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293-324
서방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콘스탄티누스 1세
동방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콘스탄티누스
305-363
44 콘스탄티누스 1세 | 45 콘스탄티누스 2세서방/콘스탄스중앙/콘스탄티우스 2세동방 | 46 율리아누스
반란자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 47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364-392
48 발렌티니아누스 1세서방/발렌스동방 | 49 그라티아누스서방/발렌티니아누스 2세중앙
혼란기 50 테오도시우스 1세동방 | 51 마그누스 막시무스&플라비우스 빅토르서방 | 비정통 에우게니우스서방
테오도시우스
379-395
50 테오도시우스 1세
서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395-455
52 호노리우스&콘스탄티우스 3세 | 53 발렌티니아누스 3세
반란자 콘스탄티누스 3세&콘스탄스 2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 요한네스
좆망테크
455-476
54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55 아비투스 | 56 마요리아누스 | 57 리비우스 세베루스 | 58 안테미우스 | 59 올리브리우스 | 60 글리케리우스 | 61 율리우스 네포스 | 62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동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395-457
52 아르카디우스 | 53 테오도시우스 2세 | 54 마르키아누스
레오
457-518
55 레오 1세 | 56 레오 2세 | 57 제노 | 58 바실리스쿠스 | 59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518-602
60 유스티누스 1세 | 61 유스티니아누스 1세 | 62 유스티누스 2세 | 63 티베리우스 2세 | 64 마우리키우스
포카스
602-610
65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610-695
705-711
66 이라클리오스 | 67 콘스탄티노스 3세&이라클로나스&다비드 티베리오스 | 68 콘스탄스 2세 | 69 콘스탄티노스 4세 | 70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695-717
71 레온티오스 | 72 티베리오스 3세 | 70 유스티니아노스 2세 | 73 필리피코스 | 74 아나스타시오스 2세 | 75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717-802
76 레온 3세 | 77 콘스탄티노스 5세 | 78 아르타바스도스 | 79 레온 4세 | 80 콘스탄티노스 6세 | 81 이리니
니키포로스
802-813
82 니키포로스 1세 | 83 스타브라키오스 | 84 미하일 1세 랑가베스
레온 5세
813-820
85 레온 5세
아모리아
820-867
86 미하일 2세 | 87 테오필로스 | 88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867-1056
89 바실리오스 1세 | 90 레온 6세 | 91 알렉산드로스 2세 | 92 콘스탄티노스 7세&로마노스 1세 | 93 로마노스 2세 | 94 니키포로스 2세 | 95 요안니스 1세 | 96 바실리오스 2세 | 97 콘스탄티노스 8세 | 98 로마노스 3세 | 99 미하일 4세 | 100 미하일 5세 | 101 조이&테오도라 | 102 콘스탄티노스 9세
미하일 6세
1056-1057
103 미하일 6세
콤니노스(1)
1057-1059
104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1059-1081
105 콘스탄티노스 10세 | 106 미하일 7세 | 107 로마노스 4세 | 108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2)
1081-1185
109 알렉시오스 1세 | 110 요안니스 2세 | 111 마누일 1세 | 112 알렉시오스 2세 | 113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1185-1204
114 이사키오스 2세 | 115 알렉시오스 3세 | 114 이사키오스 2세&116 알렉시오스 4세 | 117 알렉시오스 5세
라스카리스
(니케아 제국)
1204-1261
자립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 118 테오도로스 1세 | 119 요안니스 3세 | 120 테오도로스 2세 | 121 요안니스 4세&미하일 8세팔레올로고스
팔레올로고스
1259-1453
121 미하일 8세 | 122 안드로니코스 2세&미하일 9세 | 123 안드로니코스 3세 | 124 요안니스 5세 | 125 요안니스 6세 | 126 안드로니코스 4세&요안니스 7세 | 127 마누일 2세 | 128 요안니스 8세 | 129 콘스탄티노스 11세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6세 콘스탄티노스 6세 이리니 니키포로스 1세
이리니
재위기간
792년 1월 15일 ~ 802년 10월 31일 (10년)
이 문서는 개쩌는 여성에 대해 다룹니다.
이 틀은 하는 거라고는 빼애액밖에 없는 메오후 같은 쿵쾅이들이 아닌, 존경받아 마땅한 여전설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이 노무나도 노무섭습니다.
노무 노무서워서 아주 지려버리겄소?

로마 제국의 제81대 황제이자 로마 최초의 여성 황제이다.

지금까지는 왕조의 남자 황족들이 다 죽고 여자만 남으면 명목상의 결혼을 통해 다른 남자를 황제로 만드는 것이 관례였으나 그 관례를 깨고 자기가 직접 황제를 한 것이다. 뭐 어차피 단독 즉위 전에 이미 아들한테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으니 그 자리를 유지한 것 뿐이지만...

'이리니'는 그리스어로 평화라는 뜻으로 로마자로 쓰면 Irene, 즉 아이린과 같다. 또한 출신지가 아테네이므로 아테네의 이리니, 아테네의 아이린 등으로도 불린다.

다만 역사에서의 행보는 평화와는 매우 멀었다. 자기 배로 낳은 친아들의 눈을 뽑아 황위를 찬탈하고 수도원에 쳐박은 무서운 인물이기 때문.

황태자비? 및 황후(769-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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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년대의 어느 시점에 아테네에서 태어나 769년 콘스탄티노스 5세 시대에 그 아들이자 황위 계승 예정자인 레온 4세와 혼인했다.

775년 콘스탄티노스 5세가 죽고 레온 4세가 황제가 되자 이리니는 황후가 되었다. 레온 4세가 결핵으로 아팠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리니가 통치했다.

레온 4세는 성상 파괴론자였고 이리니는 성상 옹호론자였기 때문에 레온 4세가 성상을 부수고 성상 쉴드러들을 잡아 족칠 때 항상 이리니가 끼어들어 그들을 쉴드치고 감형하는 데 도움을 줬다.

780년 레온 4세가 죽고 9살배기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가 즉위하자 이리니는 어머니로서 섭정을 10년 동안 벌였다.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성상 파괴주의를 이단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아들은 성상 파괴론자였다. 이제 둘은 싸울 수밖에 없다.

1차 쿠데타와 실패(790-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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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년 엄마인 이리니가 먼저 선빵을 쳤다. 그러나 3년 간 이를 갈던 '이단' 성상 파괴론자들은 모두 콘스탄티노스 편을 들었다. 결과는 쿠데타 실패. 이리니는 수도원에 쳐박혔다.

복귀 및 공동 황제(792-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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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792년 콘스탄티노스는 삼촌의 반란과 이슬람, 불가리아를 모두 막아내는 것이 힘겹다고 판단, 이리니를 2년 만에 복귀시켰다.

여전히 사이가 더러웠던 그들이다. 그러나 795년 콘스탄티노스가 사이가 나빴던 황후를 쳐내고 시녀를 황후로 들이는 사고를 치자 이때다! 하고 쿠데타를 준비했다.

797년 마침내 쿠데타로 아들을 쫓아내고 두 눈깔을 파버려 수도원에 쳐박아버렸다. 그리고 이리니는 로마 제국의 단독 여제가 되고 말았다.

단독 여제(797-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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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알겠지만 로마가 특별히 여자한테 관용적이고 성평등적이어서 그녀를 황위에 앉히는 걸 허용한 것은 아니다. 군사 국가인 로마에서 황제는 당연히 군대를 이끌 줄 아는 강인한 전사여야 했는데 여자가 황제라는 것은 국가안보적으로 매우 불안한 요소였던 것이다.

동로마에서 쫓겨난 황제의 눈 코 입 귀를 썰어버리는 이유도 비슷하다. 중세 시대에 신체가 썰린 사람 내지 장애인들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황제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즉 정적의 신체를 썰어버리면 황제로 즉위할 정당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고 황제 자리를 위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코가 썰리고도 꾸역꾸역 쿠데타를 일으켜 복위한 황제(유스티니아노스 2세)도 있었지만...

프랑크인의 살리카법에서는 여성이 군주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아예 게르만족들은 로마를 공위상태로 간주했다.

그녀는 먼저 제국의 정책이었던 성상 파괴주의를 근절하고 성상을 공경하게 했다. 성상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제국의 예술(비잔티움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기에 문화적 수준 향상에 기여한 셈이다.

근데 비슷한 시기 서방의 강대국 프랑크 왕국에서는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가 있었다. 로마 교회와 동로마 제국이 사이가 나빠질수록 로마 교회를 자기 수중에 넣고 프랑크를 황제국으로 만들 가능성이 생기는데, 이리니가 성상 공경으로 로마 교회와 입장이 일치한다는 것은 카롤루스에게 위협이 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삼위일체와 관해 가장 큰 논쟁거리였던 필리오퀘 논쟁을 일부러 강조하며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를 이간질했다.

교황청에서는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유효하다고 보았지만, 교황령 성립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프랑크 왕국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카롤루스에게 800년 서로마 황제 대관식을 치러주었다.

이로서 476년 서로마 영토 상실 이후 동로마로 반납된 줄 알았던 서로마 황제 직이 324년만에 느닷없이 갑툭튀하여 유럽의 황제는 셋이 되었다.(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동로마 제국의 황제, 불가리아의 황제)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이리니에게는 불행하게도 800년대 초반의 카롤루스는 욕심이 너무 많았다. 바로 카롤루스와 이리니가 서로 혼인하여 동서로마의 통합을 이루고 유럽의 단일 제국을 세우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리니가 이 아이디어에 호의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민들은 카롤루스-이리니 결혼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결국 802년 10월 31일 이리니를 쫓아내 니키포로스 1세를 황제로 세웠다. 이로서 이사브리아 왕조는 끝나고 니키포로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리니는 쫓겨나 유배를 갔으며 803년 8월 9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