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누스 1세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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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스타시우스 1세 | → | 유스티누스 1세 | →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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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년 7월 9일 ~ 527년 8월 1일 (9년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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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제60대 황제.
졸개 병사에서 황제까지 떡상한 인물로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를 개창했다. 글을 읽지 못해 외조카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대신 실세짓을 했다.
450년생으로 지금 북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에서 농부 아들로 태어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올라가 군인이 되었다.
성실한 성격으로 아나스타시우스 1세 때 근위대장 자리까지 올라갔고, 여동생인 비길라티나의 아들 즉 자기 조카인 페트루스 사바티우스를 데려와 아들처럼 키웠다.
이렇게 아나스타시우스가 죽기 직전에는 사실상 제국의 실세가 되어 있었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에게 후계자가 없어 죽기 직전 아침에 가장 먼저 침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황위를 넘기기로 했는데, 유스티누스 1세가 가장 먼저 들어와 얼떨결에 다음 황제가 되었다...라는 카더라가 있다.
여하튼 전임 아나스타시우스가 재정을 존나 잔뜩 쌓아놓은 덕분에 유스티누스는 민심을 얻기 위해 먼저 돈부터 뿌렸다.
유스티누스는 공부를 한 적이 없고 군대에만 있어서 워낙 빡통이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외조카 사바티우스에게 통치를 대신 맡겼는데, 그가 바로 중세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였다.
519년에는 484년 제노 때 일어났던 동서교회 분열을 수습하기 위해 교황청에 사람을 보내 '그래 교황 너가 짱임 ㅇㅇ'라는 메세지를 전달, 교회 분열을 종식시켰다.
525년 외조카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테오도라의 결혼을 위해 높은 신분과 하층민 간의 결혼을 합법화시켰다.
같은 해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의 탄생 연도를 로마 건국 이후 753년 후(1년)로 비정하고 서력기원을 도입했다.